늦여름에 쓰는 푸른 유서

푸른 잔디에서 그랑블루까지

by 손잎의 노래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선선해진다. 나는 집에 있다. 돌아왔다. 하루라는 짧지 않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여기가 나의 집. 고향이다. 내가 있는 가장 고요하고 편안한 그곳이 나의 스위트홈이다. 옛날 팝송 "green grass of home'에서 흘러나오는, 슬로우 템포로 나긋나긋 소박한 푸른 잔디 위 나의 집. 밤이 되어도 어둡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다정하게 빛나는 집. 따뜻한 주황빛으로 하루의 어떤 허물도 감추어 줄 수 있는 집.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가 들리며 책 읽는 소리를 좋아하는 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거리는, 특별하지 않지만 각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비빌의 방 같은 곳, 나는 그곳에 있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이곳은 편안함 깊숙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갚고 고요함을 숨겨두었다. 나는 이곳을 찾고 이곳으로 늘 돌아오지만 가끔은 이 고요함이 낯설고 두려울 때도 있다. 내 마음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고 들여다본다는 것. 그 깊은 고요와 절대 고독은 때론 무섭기까지 하다. 바다 깊숙이 잠수해 본 사람만이 느끼는 그 완벽한 고요는 너무 크고 장엄하여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다. 그래도 견뎌야 한다. 엄마 배 속, 그 푸른 양수 안에서 하나의 존재가 되어가던, 심장과 머리 등이 하나씩 천천히 창조되고 결합되었던 그 시간을 기억하며 나는 수천 갈래의 머리카락처럼 해체되었다가 다시 오롯한 하나로 조합된다. 태초의 아메바가 되었다가 최초의 인류인 루시가 되어 살짝 뒤뚱거려보기도 한다. 눈, 코, 입이 또렷해지고 이제 나는 나를 보고 나를 듣고 나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되었다.



밤이 깊어 간다. 이제 숨을 쉬기 위해, 다시 꿈을 꾸기 위해 물 밖으로 나와야겠다. 나를 표현하고 사랑을 받고 사랑해야 할 곳은 저 곳 지상이므로 나는 지상으로 나가야겠다. 나의 20대에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었던 나의 인생 영화 그랑블루. 거기에서 주인공은 ‘가장 힘든 일은, 바다 저 깊은 곳에서 다시 올라가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라고 했고 나는 그 대사를 듣고 며칠동안 엉엉 울었다. 나도 가끔 그런 느낌을 받았으나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었던 그 것.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또 있었구나. 지상보다 저 깊은 바닷속, 저 깊은 세상이 더 숨쉬기 편한 사람들이. 지상으로 나가는 일이 숨 참는 일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바다로 돌아간 그 주인공처럼 나는 바다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아직은 나를 기다리는 무언가가 저 위에 있다. 그것이 꿈일지라도 아직은 깨지 않고 꿈을 꾸어야 한다. 꿈을 꾸며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생이 유일한 이유이다.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서. ‘안녕! 다시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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