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사랑한 팥,빙수

내 마음속의 팥빙수 찾기

by 손잎의 노래

우리 엄마는 팥을 무척 좋아하신다. 겨울에 팥이 맛있는 붕어빵집을 수소문해서 찾아내서는 팥만 쏙 빼먹고 만다. 호호 불어가면서 팥만 귀신같이 빼어 드시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난다. 요즘엔 붕어빵집이 많이 사라져서 겨울이 재미없다고 하시는 우리 엄마, 그래서 여름을 기다리게 만들고 견디게 해주는 소울푸드는 당연히 팥빙수이다. 살짝 삐져 있거나 짜증을 내기 시작하시면 특히 효과가 즉방이다. ‘엄마, 팥빙수 먹으러 갈까?” 하고 말하면, ‘뭘, “이라고 말하면서도 눈과 입은 벌써 웃기 시작하신다. 주변 몇 km이내 팥빙수집은 모두 꿰고 있고 그중에 제일 맛있는 곳만 가신다. 서비스도 좋아야 하고 인심도 좋아야 해서 조금이라도 그 질이 떨어진다 치면 가차 없이 바로 탈락이다. 다른 음식에는 단골이 정해져 있고 웬만하면 바꾸지 않지만, 팥빙수에 대한 단골집은 계속 발굴 중이시다. 그래, 역시 사랑은 변하는 거다.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팥빙수의 조건은 우선 양이 많아서 두세 사람이 함께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시골 인심에 익숙해 있으신지, 양에 예민하신 편이다. 보통 아빠와 친구분 한 명 정도 함께 드시니, 어른 세 명이 간식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전에 한 번은 자주 가시는 단골 팥빙수 집에서, 세 명에 하나만 주문하면 안 된다는 말에 얼마나 언짢아하셨는지 모른다. 내가 ‘요즘 도시에서는 1인 1 메뉴가 보통이야. 엄마, 세 분이 드시는 건 좀 너무 했다’라고 말하면 오히려 나를 한참 째려보신다. ‘시골에서는 그 정도는 해줘야 돼. 그래야 부담 없어서 자주 사 먹지” 나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지만, 시골 정서에서를 감안한다면 일리가 있다. 약간의 에누리 같은 정을 느껴야 사람 사는 것 같고, 그래야 먹을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팥빙수 선택에 대한 엄마의 소신과 철학은 냉철하고 엄격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조건은 ‘팥’이다. 팥이 많고 맛있어야 한다. 엄마의 팥 사랑은 인정하지만, 팥에 대한 미각이 발달하지 않는 나로서는 어떤 팥을 맛있다고 하시는지 그 기준을 아직 모르겠다. 특히 팥빙수의 팥은 참으로 적당한 식감이 필요하다. 너무 삶아서 물컹거려도 안되고 너무 덜 삶아서 입안에 굴러다녀도 안된다. 그 적당한 어느 사이쯤을 잘 맞추어야 한다. 약간의 씹히는 식감도 있어야 하고 특유의 쌉싸래한 맛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당히 달콤해야 한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팥 많이’다. 내가 미리 주문하려고 하면 꼭 ‘팥 많이 달라고 해라’고 한마디를 추가하신다. 팥빙수 매니아고 오랜 단골이라고 이야기하면, 팥 한 숟가락씩 덤으로 받는다.


이번에 올여름 마지막 팥빙수를 사드렸다. 요즘 다이어트 하신다고 손사래를 치시다가, 슬쩍 ‘그럼 주문 좀 해봐라’고 옆구리를 찌르신다. 팥빙수에는 한없이 약해지시는 우리 엄마가 더 좋다. 전에는 뭐든 한다면 하는 투철한 사람들이 좋았지만, 요즘에는 유혹에 좀 넘어가기도 하고 실수도 가끔 하는 사람이 좋다. 우리 엄마가 팥,빙수에 진심이고 그래서 분명한 소신과 철학,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멋있고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자신의 취향에 자신감이 넘치고, 몰입하며 뜨겁게 사랑하신다. 사실 우리도 마음속에 팥빙수 같은, 하나의 진심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소신과 철학과 열정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 무엇, 비록 작고 사소해 보인다 해도, 상관없는, 괜찮은 그것을 나도 한번 다시 찾아보아야겠다. 새로운 계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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