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회피에 대한 강력처밤
어제의 밤
하루의 감동을 내가 과연 글로 적어낼 수 있을까? 밤 9시 루틴을 결심하고 나서부터 나는 매일 그 시간이 되면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가슴이 쿵쾅댄다. 대부분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이기는 편이다. 아직 나에게는 글쓰기라는 친구가 대하기 어렵고 그래서 자꾸 예민해진다. 그런 친구와 매일밤 이야기하려니 신경이 많이 쓰이고 가끔은 피하고 싶어 자꾸 미루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점점 애가 탄다. 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댄다. 빈 화면을 앞에 놓고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급한 마음에 11시나 넘어서 한 줄을 쓰고 그렇게 시작하다가 자정을 넘기게 되고..... 겨우 뭔가 쓰고 난 뒤에는 밤이 너무 늦어 있고 지쳐 있다. 복잡한 수학 공식이라고 끙끙 대고 풀고 난 것처럼 머릿속에 그 잔상이 남아 있고 정신이 화들짝 깨어나 버려 잠이 쉽게 들지 못한다. 밤이 아니 글이 더 무서워진다.
우리의 새벽
그래서 밤 9시 루틴을 새벽 5시로 바꿔 보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로망의 새벽루틴이다. 모두들 잠든 이 시간은 어느 누구도 세상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다. 사실 어떤 시간에도 누군가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은 아니다. 내가 나를 방해한 것이다. 온갖 핑계를 대면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시간 탓 체력 탓 그게 안되면 성격 탓이라도 한다. '시간 탓, 체력 탓은 대충 알겠는데.,,,,, 성격 탓이라고? 네 성격이 어때서?' 친한 친구 H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친구야. 내가 실은 성격이 별로야. 끈기도 없고 변덕이 심해서 예측불허야. 근데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갑자기 생각난 건데, 성격 탓 대신 친구 탓 아니 친구 찬스 좀 쓸게. 글쓰기라는 친구는 아직 직접 친해지기 어려우니, 너라는 성격 무난하고 쿵짝이 잘 맞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쓰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편할 것 같아. 너 좀 빌릴게. 미안! 그냥 내 마음대로 할게. 고맙다.
아직 친구가 필요해
아직은 친한 친구라는 가상의 보조바퀴가 필요한 것 같다. 나의 글쓰기 회피에 대해 며칠간 분석해 보니 그렇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 작은 새인 줄 알았으나, 오래 날지 않아 날개에 상처도 많고 체력도 떨어져 있는 약하고 가냘픈 새였다. TV동물농장에 자주 나오는 방치되고 고립되어 있는 작고 약한 동물들처럼 나는 구조가 필요하고 회복기간이 절실하다. 갈수록 나를 나답게 세우는 일이 쉽지 않은 시절이다. 나를 나답게 세우지 못하도록 진짜 나를 보지 못하도록 진짜 나를 만나는 일과 멀어지도록, 세상은 마치 자전축을 벗어난 것처럼 빠르고 거칠게 달린다. 나는 빠르게 달리는 붉은색 회전목마에 올라탄 것처럼 몸과 마음을 가누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한다. 화려함과 분주함은 너무도 강력한 유혹이다. 나는 이미 중독되어 있고 상처 입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상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 시간을 글쓰기를 통해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