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 파리로 가는 RER 안에서 신용 카드와 학생증, 교통카드가 든 파란색 카드 지갑을 잃어버렸다. 내리기 전에 쟈키가 “다 챙겼어?”라고 물어봐서 대강 “응응”하고 대답했는데,,, 개찰구를 통과하려고 보니 카드지갑이 아무 데에도 없었다. 이미 우리가 탄 RER은 승강장을 떠났고, 다시 리옹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나는 빠르게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Gare de Australitz에서 Gare de Lyon으로 걸어가면서 프랑스 신용카드 2장, 한국 신용카드 1장의 분실 신고를 모두 끝냈다. 한국 신용카드의 분실신고 접수 내역을 보니, 어처구니 없게도 2019년부터 연례행사처럼 1년에 한 번씩 분실신고를 했던 기록이 있었다. 꾸준한 분실과 재발급의 경험 덕분에 이런 강단있는 결정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만 해도 좋았다. 프랑스의 신용카드와 학생증 모두 생각보다 빠르게 재발급이 완료되어 전혀 불편함 없이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고, 친구들이 근황을 물으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칠칠치 못한 에피소드 하나를 남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을 다녀오는 공항에서 마침내 학생 비자가 부착된 여권을 잃어버렸다. 프랑스 공항에서 Passport control을 통과했고, 집에는 남자친구의 차를 타고 같이 왔으니 도대체 잃어버릴 구간이라고는 패스포트 컨트롤을 통과하고 수하물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밖에는 없었다.
10년도 더 전에 교환학생을 가면서 선물 받았던 여권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었는데, 비행기 탑승권까지 접지 않고 넣을 수 있는 크기의 노란색 여권 지갑 안에는 나의 여권과 프랑스 심카드, 국제 운전 면허증, 그리고 친구의 부탁을 받아 전달하기로 한 친구의 국제 운전 면허증까지 들어있었다. 여권은, 잃어버리는 게 불가능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정신을 놓고 다니더라도 그렇게까지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여권까지는 잃어버릴 수가 없다는 신뢰가 있었다. 그런데 카드 지갑을 잃어버린 지 채 한달도 안 된 시점에서, 다시금 여권까지 잃어버리니 정말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카드 지갑을 잃어버릴 때에도 멀쩡했던 내 자아에 드디어 자괴감이 가득 들어찼다.
여권이야 그렇다 치지만 학생 비자를 잃어버린 게 정말 큰일이었다. 게다가 곧 비자 연장도 해야 하는데, 학생 비자를 재발급 받고 다시 비자 연장을 받기까지 그 긴 행정 절차를 밟을 일이 까마득했다. 게다가 친구의 물건까지 함께 잃어버린 것도 또 다른 한심 포인트였다. 어떻게 나와 타인에게까지 중요한 서류가 잔뜩 든 지갑을 놓고 온 걸까.
그래도 그나마 나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했던 것은, 누가 훔쳐간 게 아니라 내가 흘린 게 확실하다는 점. 그리고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의 공항에서 잃어버렸으니 누군가가 발견하면 분실물 접수를 해줄 것 같다는 기대였다. 미리 여권 분실 신고를 해놓았다가 찾게 되면 취소 과정이 또 복잡할 것 같았다. 나는 3일만 기다려보고 4일째 되는 날에 분실 신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오후 5시 10분, 핸드폰에 뜬 메일 알람 만으로도 왠지 여권을 찾은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기대가 실망이 되는 많은 순간들과 달리, 정말 대한항공으로부터 여행 서류를 보관하고 있다는 메일이 와있었다. 내 여권지갑과 나를 먼저 찾아주신 선의에 감탄하며, 나의 잦은 분실사고도 누군가에게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프랑스에서 분실 신고와 재발급 과정을 목록으로 정리해 보았다.
분실 물건 신고
기차나 공항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 각각의 온라인 분실물 신고 센터에 내용을 접수할 수 있다. 버스, 메트로, 트램, RER을 포함하는 파리 대중교통에서 분실한 경우 5일 이내에는 전화로 5일이 지난 경우 온라인 신고로 내용을 접수할 수 있다. 다만, 한국과는 달리 각 회사에서 먼저 획득한 분실물을 게시해놓는 사이트는 없다. 그리고 공항의 경우 유선 문의는 불가능하여, 대표 전화로 문의를 하여도 온라인 사이트로 안내를 해준다.
더불어 공항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본인이 탑승했던 항공사에 분실신고를 해야 한다. 나는 공항에서 어떻게 알고 내가 탔던 항공사에 연락을 주겠어? 싶어 문의를 해놓지 않았었는데, 분실물 확인 연락을 준 것은 공항 분실물 센터가 아닌 대한항공이었다. 연락이 오고나서 생각해보니, 여권으로 탑승 항공사 조회가 가능하고, 또 내 회원정보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항공사로 분실물이 전달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파리 공항: https://www.parisaeroport.fr/passagers/services/pour-vous-aider/objets-trouves
기차 (SNCF): https://www.garesetconnexions.sncf/fr/service-client/a-vos-cotes/objet-perdu-trouve
파리 대중교통 (RATP – RER 포함): https://www.ratp.fr/aide-contact/questions/signalez-la-perte-d-un-objet
대한항공 파리지사: +33 (0)1 42 97 30 70
재발급
유심, 심카드: 2번 핸드폰을 분실하고 2번 모두 분실 직후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도 받는 이가 없었다. 한 번은 동네 시장에서 잃어버렸으니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가져갔다 치지만, 국제공항의 입국 수속을 거친 후 면세점 구간에서 분실을 했을 때도 결국 핸드폰을 찾지 못했다. 다만, 아주 혹시라도 나처럼, 프랑스 심카드를 잃어버린 경우 온라인으로 기존 심카드 정지 및 재발급 신청이 가능하다. Free 를 기준으로 재발급 요청 후 우편 배달까지 3일 정도가 소요되며 심카드 비용 10 유로가 다음 달 통신비와 함께 청구된다.
신용 카드: 프랑스 신용 카드를 잃어버린 경우, 대부분 핸드폰 앱을 통해서 즉시 분실신고가 가능하다. 분실 신고를 하면 별도 절차 없이 등록했던 집 주소로 신규 카드가 발급된다. 내가 사용하던 소시에떼 제네랄 (Societe General)의 애플페이 카드는 분실 신고와 함께 바로 재발급이 되어 사용할 수 있었다.
여권: 가까운 시일 내에 비행기를 타야하는 데 여권을 분실한 경우라면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을 통해서 임시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주말에도 긴급여권 발급을 위한 연락망을 열어놓고 있다. 당분간 여권 사용이 필요하지 않다면 – 즉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는 경우, 재외국민 민원포털 영사 24 (https://consul.mofa.go.kr/biz/main/main.do) 를 통해서 온라인 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 발급받은 여권을 찾으러 갈 때는 대사관으로 가야하며, 사용이 긴급한 경우 프랑스까지의 배송을 DHL로 신청할 수 있다.
비자: 비자가 부착된 여권을 분실했다면, 우선 여권을 재발급 받아야한다. 이후 재발급 받은 여권을 가지고 관할 Prefecture에 가서 비자를 재발급 받아야 한다. 주변 인물들 모두 “prefecture”라는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prefecture에 문의해두었던 메일에는 답변을 받지 못했지만, 세 달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체류증: 체류증을 분실한 경우, 프랑스 거주 외국인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이트인 https://administration-etrangers-en-france.interieur.gouv.fr/particuliers/에 로그인 후 « Je déclare un changement de situation » 메뉴를 통해서 재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
국제운전면허증: 포기하자! 한국에 가야한다.
정말 안 잃어버린 게 없잖아! 하고 돌이켜보니 그래도 집 열쇠는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부디 이 글에 ‘열쇠’가 업데이트되지 않길...!
+) 그리고 4달만에 잃어버린 카드 지갑을 찾았다!
https://brunch.co.kr/@sonoeunz/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