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월요일 오후 SNCF (프랑스 철도청) 분실물 센터에서 내 신고를 접수했다는 알림을 받았다. 이미 4개월 전에 신고 접수를 했던 건데 이게 왠 뒷북이지 하고 말았는데, 그리고 한 시간쯤 뒤 다시 내 지갑을 찾았다는 메일이 왔다.
4개월 만에 갑자기 지갑을 찾았다는 데다가, 10유로가 청구된다는 안내와 온라인 지불 링크가 있어 처음엔 사기인가 싶었다. 그런데 메일에 기재된 분실물 정보가 내가 기재했던 내용과 동일했고 (파란색 카드지갑, 브랜드 없음 등) SNCF의 공식 분실물 센터 사이트에서도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잃어버린 지가 한참 된 터라 지갑 안에 들어있던 신용카드, 학생증, 운전면허증 모두 재발급 받았고, 되찾고 싶은 것이라고는 카드 지갑에 꽂아 두었던 조카 사진 뿐이었다. 게다가 지갑의 상태도 심히 염려스러웠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건 기차 안 어딘가에 깊숙이 박혀있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시나리오였는데,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파리의 지하철 안에서 내 카드 지갑이 어떤 오물을 뒤집어 썼을지는 내 상상보다 현실이 더 끔찍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강하게 이끄는 단 한가지 이유는 그냥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경로로 내 지갑이 4개월 만에 나타났는지, 가서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날 따라 대사관을 들렸다 가느라 귀가길이 달라진 덕에, 내 지갑이 있는 몽파르나스역에서 환승을 해야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풀지 못할 궁금증을 해결하는 비용으로, 10유로는… 여전히 비싸지만 그래도 지불 가능한 금액이라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어졌고, 나는 노트북이 든 에코백을 어깨에 맨 체 커다란 몽파르나스역에서 분실물 센터를 찾아 헤맸다.
구글 지도의 단 하나의 리뷰가 알려준 대로, 분실물 센터의 담당 직원분은 무척 친절하셨다. 내가 분실물이 밀봉되어져 있던 비닐 봉투를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자 ‘이게 SNCF 분실물이 담기는 봉투다. 가져갈래?’ 라며 봉투를 건넸다. 우리는 그걸 주고 받으며 한바탕 웃었고 작별인사를 고한 뒤, 나는 분실물 센터를 나왔다. 애초에 잿밥을 바라고 갔던 나는 플라스틱백 뒷면에 적힌 분실물 정보를 정독했다.
습득일: 2022년 4월 2일
습득 장소: RER C Viroflay역
습득인: 승객
그러니까 어떤 착한 승객 덕분에 4월 2일 Viroflay 역무원에게 맡겨졌던 나의 지갑은, Viroflay와 몽파르나스 그 어디 쯤에 3개월 20여일을 방치되었다가 갑자기 세상에 꺼내진 것이었다.
내가 도대체 언제 잃어버렸던 거지 싶어 메일과 사진들을 뒤져보니, 내가 잃어버린 날이 정확히 4월 2일. 그리고 SNCF에 분실 신고를 한 날이 4월 4일이었다. 이후 5월 초쯤, SNCF는 분실물을 찾지 못했다며 나의 신고를 폐기하겠다는 안내를 보냈다. 이미 내가 직접 접수했던 신고는 유효하지 않으니 내 신고를 다시 생성하고 분실물 습득 알림을 보냈던 것이, 그 날 내가 메일을 두 개나 받은 이유였다.
어쨌든 지갑을 찾았기 때문일까. 4개월 동안 습득품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주제에 서비스 품질 유지 및 개선의 명목으로 10유로나 받는다는 게 괘씸했지만, 아주 억울한 마음이 들거나 화가 치밀어 오르지는 않았다. 다들 프랑스에서 잃어버린 물건은 되찾을 길이 없다고 했는데, 그래도 그걸 주워서 역무원에게 전달해주는 착한 프랑스인이 있구나 싶어 감사하고도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연달아 지갑과 여권을 잃어버린 경험을 돌이켜 보면, 프랑스에서 분실물 찾기는 소통이 불가능한구조였다. 공항과 기차역 모두 전화 문의를 받지 않고, 오로지 웹사이트로만 분실물 신고를 받는다. 분실물 신고자가 개별 담당자에게 문의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없고, 습득된 분실물을 공개하는 웹사이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Virofly역에서 몽파르나스역으로 내 지갑이 이동한 걸 보면, 모든 역에 분실물 처리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고 특정 역의 분실물 센터에서만 처리가 가능한 모양이다. 엄청난 관광도시이니 분실물 양이 너무 많아서 개별 역에서는 소화가 불가능할지도, 혹은 습득 분실물의 도난이나 재분실이 많이 일어나는 탓일지도, 혹은 개인 정보 노출에 더욱 민감한 프랑스가 분실물 처리 권한이 있는 담당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렇게 진화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비효율적인 시스템인 건 틀림없지만 말이다.
나도 구글 리뷰를 하나 달까 하다가, ‘내 물건을 찾아가는 데 10유로를 내라니’로 끝나는 그 유일한 리뷰에 달린 시설 소유자 댓글이 ‘많은 수의 분실물이 안티테러리즘 프로토콜의 대상으로 열차 운행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생각을 접었다.
그래 이 정도 기분 상하고 이 정도 기분 좋았으면 됐다. 내 댓글 하나로 SNCF의 분실물 센터가 변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