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콜라
오랜만에 파리에 온 기분을 한껏 내고자 지난 토요일 오후 몽마르뜨 나들이에 나섰다. 코로나 규제가 풀린 첫 여름답게 몽마르뜨 언덕 밑에 위치한 사랑해벽부터 꼭대기 사크레쾨르 성당까지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도 모처럼 파리 나들이에 신이 나 몽마르뜨 언덕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마음에 드는 기념품 가게, 디저트 집, 인테리어가 예쁜 식당들을 구경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조그만 기념품들을 산 뒤, 우리는 식사 전 맥주 한 잔을 하기 위해 사크레쾨르 성당 근처 테르트르 광장 (Place du Tertre)에 있는 한 브라세리의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에 앉고 나서야 메뉴판을 보니 칵테일 한 잔이 13유로.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함께 있던 쟈키가 나를 말렸다. 이미 2-3 시간을 동네를 헤매고 다니면서 둘 모두 지쳤으니 그냥 여기서 간단히 마시고 나가자는 쟈키의 말에 나도 금새 마음이 동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밥 값에 근접하는 돈을 음료 한 잔에 쓰기는 억울했다. 칵테일을 제외한 다른 음료들은 메뉴판에 나와있지 않았기에 가격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나마 제일 저렴할 것으로 추정되는 콜라를 한 잔 주문했다.
테르트르는 차가 다니지 않는 네모난 광장으로, 브라세리와 카페가 일층을 채운 빌딩들이 광장의 경계를 만든다. 브라세리들을 따라 둘러져친 테라스 자리들 안쪽의 광장에는 식사를 하는 레스토랑의 손님들, 캐리커쳐를 그리고 풍경화를 전시해놓은 화가들 그리고 이를 구경하는 인파들이 모여 활기가 가득했다. 우거진 나무들과 맑은 하늘까지 더해진 아름다운 광장을 보면서 비싼 바가지 요금에 대한 불만을 옆으로 살짝 밀어낼 수 있을 만큼 근사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콜라가 채 나오기도 전에 브라세리 안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우연히 들어온 이 브라세리에는 저녁 식사 시간 때 공연이 있는 모양이었고, 운이 좋게도 두 연주자의 자리는 우리가 앉은 테라스 바로 뒤쪽이라 가까이서 공연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두 개의 기타와 목소리로 만들어진 음악은 광장의 광경을 한껏 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 주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 공연을 보는 연인들이나 리듬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모두 즐거우면서도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30분, 길면 한 시간쯤 수많은 사람들이 음악 앞에 가던 길을 멈추는 걸 바라보면서, 이 광장에서 사람들은 더 순수해지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몽마르트를 구경하기 전날, 프랑스에 산 지 벌써 4년이 되어가는 친구의 집에 놀러가 와인을 마시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이도 들 만큼 들었고 둘 다 곧 학교도 끝나가다 보니 친구와는 늘 프랑스에서 계속 살고 싶은지 하는 고민을 나누게 된다. 1년 만에 프랑스나 한국이나 그게 그거다 라는 결론을 내린 나와는 달리 친구는 파리 도시 자체의 아름다움에 큰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평소에도 집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즐기지 않는 나는 파리 시내에 나가면 참 예쁘긴 예쁘구나 하고 느끼는 정도가 다인데, 친구에게는 파리가 자아내는 분위기가 정서적으로도 큰 영감이 되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하는 결론으로 대화를 마무리한 게 만 하루도 안 됐는데, 테라스에 앉아있는 동안 친구가 말한 파리에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무엇인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받아든 계산서의 콜라 값은 8.5 유로, 한국 돈으로 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칵테일 값을 보고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가격에 금세 다시 의기소침해졌다. 이제 가격을 안 이상 다시 그 브라세리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날 몽마르뜨는 너무 행복했고 그 테라스에 앉은 시간은 그 하루 중 가장 특별했다.
P.S
몽마르뜨의 바가지 요금을 피하고 싶다면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마르뜨 광장을 오감으로 느끼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