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나라 프랑스로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어느 음식점에서나 오리 고기(Canard)와 소고기 스테이크(Entrecôte) 뿐. 설레는 마음으로 달팽이와 푸아그라를 맛보고 나면 더 이상 딱히 생각나는 음식이 없다.
학교의 프랑스인 동기들에게 물어도 ‘그러고보니 명확히 프랑스 요리라고 부를 만한 음식은 별로 없는 것 같다’라는 대답을 들을 정도로 빵과 디저트를 제외한 음식은 조리법이 비슷하고, 종류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설레는 마음으로 프랑스에 여행왔지만, 프랑스의 음식이 실망스러울 때. 프랑스 음식은 아니지만 여행 기분을 낼 수 있는, 한국인의 입에 딱 맞으면서도 한국에서 먹기 어려운 맛있는 음식들이 여기 있다.
1. 홍합찜 (Moules-Frites)
본래 벨기에 전통 요리라고 하나, 프랑스 어디서든지 - 특히 바닷가 근처라면 더욱 - 맛있는 홍합찜을 먹을 수 있다. 홍합을 화이트 와인에 졸이는 게 바탕이 되는 요리로, 가장 기본 메뉴인 Moules Marinières는 시원하고 산뜻한 국물 맛을 느낄 수 있고 블루 치즈 (Roquefort)를 넣은 홍합찜은 강한 치즈 향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려 조금 더 부드럽게 블루 치즈 맛을 느낄 수 있다.
홍합찜은 Moules (홍합) 과 Frites (감자튀김) 자체가 요리의 이름일 정도로 감자튀김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음식이지만, 역시 한국인은 밥심. 따로 요청할 경우 감자튀김을 밥으로 교체하거나 밥을 추가할 수 있는 식당들도 종종 있다. 시원한 홍합 국물과 밥이 함께라면 그 어떤 음식이 부럽지 않다.
2. 쿠스쿠스 (Couscous)
쿠스쿠스는 모로코의 정통 요리이다. 모로코는 프랑스에 식민지였고, 지금도 프랑스어가 모로코의 공용 언어 중 하나일 정도로 프랑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달가운 인연은 아니지만 프랑스로 이주한 모로코인들이 많은 덕에, 맛있는 모로코 요리를 프랑스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다.
쿠스쿠스를 주문하면 채소를 끓인 수프와 그릴에 구운 바비큐가 찐 곡물가루 (Semoule)에 곁들여 나온다. 이 중 쿠스쿠스는 찐 곡물 만을 칭하는 말이지만, 꼭 이 세가지가 세트로 쿠스쿠스라는 요리인 것 같다.
1인 1 쿠스쿠스를 하기에는 아주 배부르고 양이 많으니, 2명 이상이 갈 경우 사람 수 보다 적게 시키거나 Couscous legumes과 (이 경우에는 구운 바비큐가 나오지 않는다.) 바비큐를 곁들인 쿠스쿠스를 하나씩 시켜 나누어 먹으면 음식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모로코산 와인이나 민트차도 쿠스쿠스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특히, 민트잎 다발을 통째로 넣은 찻주전자에 나오는 민트차는 무척 달아서 생소하지만 개운하고도 이국적이다. 평소 그리운 맛은 아니지만, 쿠스쿠스를 먹는 날에는 식 후 커피 대신 한 잔이 꼭 생각난다.
3. 쌀국수와 사천 요리 (Restaurant Vietnamien / Chinois)
이민자가 많은 프랑스답게 현지인이 직접 요리하는 다채로운 이국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모로코야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훨씬 가까우니 그렇다 치지만 쌀국수와 중국 음식 같은 아시아 음식도 한국에서보다 더 본래에 가까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쌀국수 – 파리 13구
특히 베트남 음식점들은 파리 13구에 몰려 있다. 그 중에서도 포13과 포14는 실패가 불가능한 쌀국수 맛집. 그 외의 근처 쌀국수들도 대부분 베트남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어, 줄이 길 때는 다른 곳에 가더라도 손꼽히게 맛있는 쌀국수를 먹을 수 있다.
사천 요리 – 파리 9구
갤러리 라파예뜨, 프렝땅 백화점 등이 위치한 쇼핑 지구, 파리 9구에 가면 중국어 간판의 음식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부분 매콤한 향신료 맛을 내는 사천 음식 전문점들이 많아 치즈와 크림으로 맛을 낸 서양 음식들만 먹다가 이 곳을 찾으면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한다. 소고기와 닭고기, 채소 볶음 등이 성공율이 높고 안정적이지만, 의외로 생선 요리도 무척 맛이 좋았다. 고추, 향신료와 함께 절임류의 채소를 넣어 새콤 매콤한 맛이 나는데, 지금껏 먹어본 적 없는 별미였다.
절대적으로 추천하지 않는 아시아 음식이 있다면 일본 음식. 일본 문화 유행에 편승해 중국인들이 연 식당들이 대부분이라 음식 맛이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곳들도 워낙 생선 값이 비싸고, 일본쌀이 희귀한지라 가격 대비 양이나 종류가 아쉬운 곳이 많다. 한국에 가면 먹고 싶은 음식으로 초밥을 꼽을 만큼 일본 음식은 프랑스보다 한국이 훨씬 더 맛있었다.
4. 미식 레스토랑 (Restaurant Gastronomique)
쉐프의 독창적인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는 Restaurant ‘Gastronomique’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식당에 가야 한다. 와인 한 잔을 곁들일 경우 한 끼에 쉽게 1인당 10만원이 넘어가는 값이지만, 바질을 갈아 만든 셔벗, 발사믹 식초를 농축한 소스를 곁들인 차가운 토마토 수프 등 다채로운 식재료를 활용해 만들어낸 예쁜 요리들의 향연은 프랑스 여행의 경험을 위해 투자해볼만 가치가 있다. 요리들이 나올 때마다 서버 분이 음식의 재료나 조리 방법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데 그 한 접시에 담긴 정성을 듣고 있자면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다해야겠다 싶은 자극이 되기도 한다.
보통 미식 레스토랑에서는 단품은 판매하지 않고 3-5개의 요리가 나오는 메뉴만을 판매하며, 그마저도 채식 메뉴를 제외하고는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는 편이다. 보통 점심은 전식 – 본식 – 후식 3가지 음식이 제공되며 메뉴가 더 저렴한 편이고 저녁은 5-6가지 음식이 제공되어 식사비가 더 비싸다. 아무래도 파리의 물가가 훨씬 비싸니 아주 유명한 곳에 가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파리 이외 지역에서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예약은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