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나와 살다 보니 늘 마음 한 켠에는 한국 음식이 그립다. 큰 맘 먹고 한인식당에 가서 현지에 입맛에 맞춘 김치 찌개를 먹을 때면 저렴한 가격의 얼큰한 김치찌개가 생각이 나지만, 그보다도 가장 먹고 싶은 건 이름도 제대로 없는 엄마의 간단한 요리들이다.
느즈막히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입이 심심한 주말 오후가 되면 엄마는 소면을 해주곤 했었다. 잘 삶은 소면에 간장, 참기름, 설탕을 취향껏 적당히 넣어 고루 비벼 먹었는데 물 끓이는 시간을 포함해도 조리 시간이 10분을 넘을까 말까한 간단한 요리다. 소면을 삶아서 라면보다 건강한 느낌이 들고, 맛이 깔끔하고 담백해서 특히 여름철과 초가을이면 더 생각나는 음식이기도 했다.
그 맛이 그리워 프랑스에서도 한 번 해먹은 적이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노란색 봉투의 오뚜기 소면을 공수해온지 얼마 안 되어서 재료에 자신이 있었고, 레시피라고 말할 것도 없이 요리법이 간단하니 실패할 일이 없어 보였다. 소면을 팔팔 끓는 물에 3-4분 정도 짧게 삶고 집에서 먹던 내 취향대로, 간장 보통, 참기름과 설탕은 조금, 그리고 그 위에 김고명을 잘라 얹으면 준비 끝. 그런데 이런 간단한 요리에도 엄마의 비법은 숨겨져 있었나보다. 헹군다고 헹구었는데, 소면의 전분기가 덜 씻겨나갔는지 국수가 잘 비벼지지 않고 서로 달라 붙는다. 후루룩 입 안으로 미끄러지는 소면을 기대했는데, 달라붙은 면이 꼭 결혼식 부페에서 손님들을 오래 기달린 잔치 국수 같이 되어버렸다. 실패한 소면이 아쉬워 엄마에게 이야기하니 ‘응, 소면은 잘 헹구어야 해.’ 라고 말씀하신다. 문제는 내가 나름은 최선을 다해 헹구었다는 거다.
오로지 김치만 넣은 단순한 김밥도 출출할 때면 생각나는 음식이다. 김에 밥을 잘 펼친 뒤, 김치를 올린다. 그리고 간장을 약간 뿌려 간을 더한다. 엄마는 부엌 식탁에 꽃들이 그려진 넓다란 쟁반을 올리고는 그 위에서 대나무 발도 없이 김밥을 만들어 주곤 했다. 김치 김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기만 해도, 주홍색 부엌등 아래 가족들이 둘러 앉아 말아지는 것과 동시에 김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엄마가 만들어 줄 때는 김치에 비해 밥이 너무 많다는 둥, 간장을 조금만 넣어 달라는 둥 불만 사항도 많았는데, 엄마 없이 타지에 지내니 불평은 커녕 아예 맛볼 수가 없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한인 마트나 아시아 마트에서도 김치를 구할 수 있지만, 김밥 위에 길게 찢어 올리던 새콤하게 익은 포기 김치는 나에겐 여전히 엄마의 김치 냉장고에만 존재하는 재료이다.
작년 겨울, 한국에서 프랑스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삶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지냈는데, 책은 엄마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어 곁에서 간호를 하다 엄마를 떠나 보내고 다시 마음을 추스리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제목의 H마트는 미국에서 가장 큰 한인 마트 체인으로 작가가 엄마와 한국 음식 재료와 간식들을 사러 가곤 했던 장소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작가는 이제 더 이상 같이 한국 식재료를 고르고 요리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큰 상실감을 느끼지만, 그만큼 한국 음식에는 엄마와 추억이 가득 담겨있기에 엄마가 자주 해주던 한국 음식들을 만들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게 된다. 나는 금방 또 가족들을 만나러 올건데도, 작가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음식에서 위안을 받는 상황이 공감되서 비행기 안에서 참 많이도 울었다.
한국에 갔다 오면 한국인 친구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왔느냐고 물어본다. 그럼 나는 “응. 집 밥 많이 먹고 왔어.”라고 대답한다. 타국에 살고 있는 요즘, 한국에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평소보다 조금 짜게 된’ 나물, ‘옆 집에서 줬는데 간이 싱거워서 엄마가 양념을 추가한’ 배추 김치, ‘마트 갔는데 고기가 너무 좋아보여서 산’ 삼겹살이다. 반찬 하나, 하나를 꺼내면서 엄마가 소소한 이야기를 얹어주던 평범한 저녁식사가 무척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