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겠다는 포부를 가진 뒤로 내게는 온갖 것들이 책의 소재로 보였다. 지금 나는 파리에 살고 있어서 파리 생활이나 파리의 맛집 같은 것들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6년간 마케터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수기를 곁들인 마케팅 기본서를 써볼까도 생각했다.
그와 함께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게 취업 준비생 시절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써 내려갔던 월간 웹진 <청춘양식>이었다.
취업 준비생을 거쳤던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그 시절 취업 준비 외에 다른 무언가를 할 마음의 여유는 없지만, ‘취업 준비’만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걸. 비슷한 처지의 우리 다섯은 그 지난한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책 모임을 시작했고, 잘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블로그 웹진을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매달 한두 개의 공통 주제를 정해 각자 에세이를 쓰고, 주제에 맞는 책과 영화를 추천하는 코너도 만들었다. 그달의 이슈를 적거나 주변의 지인들에게 글을 부탁하기도 해, 한 달이면 15개가 넘는 글이 모였다.
다들 일을 찾으면서 서서히 웹진에 쏟을 시간이 없어졌을 때까지 약 1년, 그리고 몇 년 후 브런치로 플랫폼을 옮겨 다시 부흥을 꾀했던 5개월을 합쳐 우리가 다뤘던 주제가 23개나 되었다(이북을 준비하며 회의할 때 “우리 그때 별 생난리를 쳤구나!”라고 감탄할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다섯 명 모두 이 웹진에 진심이었다).
글을 썼던 블로그와 브런치를 다시 살피면서 나는 <청춘양식>으로 eBook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가장 단순한 이유는, 이미 글들이 있었기 때문에 eBook으로 출간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쉽게 무언가를 시작은 하지만 지구력 있게 밀고 가는 사람은 못되었다. 글을 쓰다가 막히는 때가 온다면 나는 꾸물거리다가 해이해질 게 뻔했으므로, 원고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건 엄청나게 큰 강점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충분히 매력적인 글과 기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웹진을 만들었던 당시에도 지하철 안이나 잠자기 전 같은 자투리 시간에 생각거리를 줄 수 있는 잡지가 되자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 목표는 여전히 유효해 보였다. 내 스스로가 쇼츠나 릴스를 보면서 멍하니 시간을 때우다가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았는데, 그런 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게, 그러나 너무 피로하지는 않게 보내기에 좋은 글들이었다.
5명이 쓴 글이었기 때문에 관점이나 관심사가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도 좋았다. 예를 들면, ‘여성’이 주제였던 달도 누군가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언급하며 생리 조크에 관한 글을 썼고, 누군가는 법조문을 인용해 낙태죄 폐지에 관한 글을 썼다. 알고리즘으로 좁아진 우리의 시야를 조금은 환기하는 역할을 할 것 같았다.
마지막 이유는 쌓인 글에 대한 애정이었다. <청춘양식>은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들을 만들어준 계기이기도 하고, 그 힘들었던 취업 준비 시절에 내가 애착과 자부심을 가진 유일한 숨구멍이기도 했다. 워낙 오래되어 이제 검색을 해도 찾아지지 않을 만큼 구석에 묻힌 게시물들을, 오랫동안 독자를 만날 수 있는 형태로 – 적어도 그런 잠재력을 가진 형태로 – 만들어 두고 싶었다. 언급한 이유 중 가장 비논리적이며 뜬구름 잡는 소리이지만, 결국 이 프로젝트를 완결로 끝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일 것이다.
친구들에게 말도 하지 않고 우리가 썼던 글들을 엑셀 파일 목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나라는 백수가 네 명의 친구들을 설득해 잘 갖추어진 원고들을 eBook으로 옮기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여담) 앞서 말한 글들도 여전히 책으로 펼칠 꿈과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파리 생활은 친구와 함께 (우선) 브런치 북으로 발간했어요.
https://brunch.co.kr/brunchbook/parisyesorno
이 브런치북은 5명의 친구들이 함께 5개월간
이북 <유튜브도 좋지만 가끔은 생각하며 살고 싶어>를 만든 여정을 담았습니다.
이북과 브런치북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6313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