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치유해주는 나만을 위한 밥상
정오가 가까워진 시각
침대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다 배고픔을 더 이상 미루지 못할 때 즈음 스믈스믈 부엌으로 나온다.
창문을 활짝 열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습관처럼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는다.
루꼴라와 토마토를 차가운 물에 깨끗이 씻어 체에 밭쳐두고 도마를 꺼내 야채를 송송 썰고 6분간 삶은 파스타면을 넣은 뒤 현란한 손목 스냅으로 프라이팬을 휘리릭 튕겨주면 어느새 파스타가 완성된다.
파스타를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 접시에 예쁘게 담아낸 뒤 파르메산 치즈를 그라인더에 솔솔솔 갈아주고 집에서 키우는 바질 잎을 따다 꽂아주면 제법 그럴듯한 레스토랑 비주얼이 나온다.
"와... 이걸 내가 만들었다고? 진짜 끝내주는구만!"
토마토 홀과 신선한 채소로 만든 파스타는 확실히 시판용 소스와는 차원이 다른 고급스러운 맛을 낸다.
이렇게 맛있으니 어쩔 수 없다. 점심부터 와인을 꺼내와 홀짝거린다. 요즘 주말을 보내는 나의 패턴이다.
식자재 물가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 안에 드는 한국에서 1인 가구에게 요리란 시간과 돈과 노동력에서 최악의 가성비다.
입이 하나면 오히려 매끼 사 먹는 게 모든 면에서 효율적이다. 그런데도 굳이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는 "힐링"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도시의 고단한 삶에 지칠 대로 지친 김태리가 어릴 적 살던 시골집으로 돌아와 직접 만들어 먹는 소소한 요리들로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보며 누구보다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처럼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하고 그 요리를 즐겁게 맛보는 과정은 정말로 영혼을 치유해 준다.
지난날, 한창 요리를 열심히 했던 시즌을 돌이켜보면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을 때였다.
우울한 에너지는 무겁다. 그 무거운 공기가 내 몸을 사정없이 짓누르면 도통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어진다. 그렇게 침대 위에 납작하게 눌린 채로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배달 앱을 들여다본다.
초인종이 울리면 현관 앞에 놓인 비닐봉지를 가져와 플라스틱 통들을 꺼내고 그걸 또 플라스틱 칼로 뜯고 플라스틱 포크로 음식을 먹으면서 부엌 한켠에 쌓여있는 플라스틱들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인생에 대한 현타가 찾아온다.
"그럴 땐 귀찮아도 요리를 해야 한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장을 보러 나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햇빛을 쐬며 산책하게 되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고 접시에 예쁘게 담아내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수고로움은 잠시 지겨워졌던 삶에 다시 애정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요리는 어김없이 나를 다시 일으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