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서율 Sep 15. 2022

엄마표 찌짐

명절 때마다 그리운 '레시피 없는 요리'  


출근길 공기가 스산해진 가을

회사에서 보낸 명절 선물 택배가 현관 앞에 놓여있는 걸 보고 나서야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온 걸 실감했다.


딱 이맘때쯤 되면 항상 그리운 음식이 있는데 명절에 엄마가 해줬던 "찌짐"이다.


찌짐이라고 하면 "전"을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지만 우리 집은 제사를 올리고 남은 전들을 모아 매콤한 양념에 버무려 전골냄비에서 한참을 졸여냈는데 국물이 없으니 전골이라 부를 순 없고 "매운 모듬전 조림" 정도로 정의하는 게 맞겠다.


이 음식을 우리 집안사람들 모두 "찌짐"이라고 불러서 나는 일평생 매운 양념으로 조린 전이 "찌짐"인 줄 알았다.   


몇년 전 찌짐이 너무 먹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보는데 "찌짐"은 그냥 전을 의미하는 말이었고 "우리집식 찌짐"은 아무리 뒤져봐도 유래도, 레시피도, 이름조차도 찾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식이었다.  


그냥 집어먹어도 맛있는 게 전인데 구태여 양념을 해야 하나 싶지만 찌짐의 맛을 알게 되면 그 중독성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찌짐에서 가장 메인은 동그랑땡도 동태전도 아닌 "부추전"이다. 쌀밥 위에 매콤한 양념이 밴 야들야들한 부추전을 올려 먹으면 갓 부쳐낸 전보다 훨씬 맛있다.




서른다섯의 가을, 엄마의 "찌짐"을 먹은 지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엄마는 30대의 나를 본 적 없고, 나는 60대의 엄마를 본 적 없다. 앞자리가 바뀔 만큼 벌어져 버린 부재의 공백 사이로 야속한 세월만이 빠르게 흘러간다.


그래도 세월의 물살 덕분에 뜨거웠던 원망의 불씨가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갔다. 아팠던 기억들은 무의식이 알아서 편집해 주는지 조금씩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엄마의 기억도 더 뿌옇고 희미해졌으면 좋겠다. 회상의 굴레 속에서 아파하지 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적막한 공기가 숨통을 조이는 잔인했던 명절이 한해 한해 지날수록 덤덤해진다.

이제서야 나는 이방인의 삶을 받아들인 것 같다.


그래도 이맘때쯤이면 여전히 찌짐이 생각난다.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엄마표 찌짐이 먹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날 피칸파이가 속삭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