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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율 Nov 23. 2022

삶이라는 예술작품

흙으로 나만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열심히 살아도 부질없네, 애초부터 금수저로 태어났었어야 해"


카페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나 또한 과거에 끊임없이 품어왔던 불만이었다. 삶이라는 작품은 만들기도 전에 이미 주어진 재료부터 불공평했으니까


누군가에겐 금이 주어지고

누군가에겐 은이 주어지고

누군가에겐 동이 주어지고

누군가에겐 흙이 주어지는데 하필이면 그게 나였다.  


처음에는 나에게 주어진 재료가 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옆에 앉은 사람들은 화려한 금과 은을 재료로 인생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공부를 못해도 미국으로 가서 명문대 학위를 사는 걸 보았고, 취업을 못해도 가업승계를 받아 CEO 직함을 달았다. 이렇게 누군가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작품을 너무나도 쉽게 만들었다.


나는 내 앞에 놓여있는 볼품없는 흙더미를 노려보며 잔인한 현실에 탄식했다. 애초부터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으니까.




그러다 몇 년 전, 진짜 흙으로 만든 예술작품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홀로 찾은 제주의 미술관에서 당시 작가 김창영의 "모래, 흔적 그리고 인생"이라는 전시를 열고 있었는데  


캔버스 위에 모래를 붙이고 다양한 색을 입혀 독창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너무 멋져, 한참을 서서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 김창영의 모래, 흔적 그리고 인생 전시


작가 김창영은 1979 부산 해운대 해변의 모래 위에 남은 발자국이 파도에 밀려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생성과 소멸, 삶과 예술에 대해 깊이 성찰한 , 평생 캔버스 표면에 실제 모래를 접착제로 부착하여 유채로 묘사하는 작품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그의 작품의 재료는 모래였지만, 결과물은 우아하고 현대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의 작품은 나에게도 삶과 예술에 대한 성찰을 주었는데, 주관적인 아름다움으로 평가되는 정답 없는 예술은 삶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과거의 나는 아름다운 삶에 대한 기준을 얼마나 많은 부를 이루었는가로 평가했다.

통장에 잔고가 얼마가 있고, 어느 지역에 살고 있으며,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에 살고, 어떤 고급 차량을 끄는지


이렇게 인생을 수치화하고 많이 가지고 누릴수록 아름다운 삶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삶에 대한 고찰을 거듭할수록 삶은 수치로 평가할 수 있는 단순한 영역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일류 항공사나 언론사를 이끌어온 재벌가의 사람들이 약자에게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는 장면을 보며 금이라는 재료가 차고 넘쳐도 작가의 역량이 부족하면 결코 "아름다운 삶"이라는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삶은 인성, 습관, 취향, 라이프 스타일, 성취, 부, 사랑과 같은 복합적인 재료가 한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개개인의 독창적인 작품인데

여기서 고작 한두 가지가 결여되어 추한 형태로 변질돼버린 삶도 있고, 여기서 대부분이 결여되어도 기어이 예술로 승화해 내는 삶도 존재한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나흘간 커피로만 끼니를 때우며 캔버스에 열정을 불태웠던 반 고흐,

연인이자 뮤즈였던 디에고의 배신에 대한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프리다 칼로처럼 그들의 삶은 고통마저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




결국 삶이라는 작품의 최종 가치는 주어진 재료보다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역량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똥손에게 금이 주어지고, 금손에게 흙이 주어진다면. 그램 수로 가격을 책정하는 귀금속 상가에서는 똥손이 만든 금붙이를 더 높게 쳐줄 것이다. 그러나 예술성에 가치를 매기는 갤러리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저울 위 인생보다

갤러리에 걸린 인생을 살고 싶다.


나는 당장 손에 주어지는 금이라는 재료보다

고통과 가난마저 예술로 승화해 내는 뛰어난 작가의 역량을 가지고 싶다.   




이제 더 이상 타인의 작품을 들여다보는데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팽개쳐두었던 흙을 모아 손에 꼭 쥐어보았다. 그 속에는 소란했던 기억들과 크고 작은 고통의 알갱이들이 한 데 뒤섞여있었다.


흙은 초라하고 투박하지만 생명을 품는다.


이제 이 흙을 재료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여 창조해낼 수 있는 나만의 독창적이고 멋진 예술 작품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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