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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율 Jan 24. 2023

현명해지는 트레이닝

3인칭 관찰자 시점은 놀라운 통찰력을 키운다     


"이를 어쩌죠? 어머니 영문 성함이 여권과 달라서 티켓팅을 할 수 가없네요.."


"네? 그럴 리가 없는데?"


7년 전 인천공항,

항공사 직원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20대의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동생이 항공권을 예매할 때 엄마의 영문 이름을 잘 못 기재한 거다.


며칠 전 노트북 앞에서 한참 예매하고 있길래 영문 이름 철자는 절대로 틀려선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그걸 기어이 틀렸다니 기가 막혔다.


이로써 호기롭게 떠나는 베트남 가족여행은 비행기조차 타보지 못하고 무산되는 상황이었다.


"야!!! 그때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와 짜증 난다 정말!!! 아니 그걸 기어이 틀려? 너 어쩔 거야 이 상황을!"


나는 분에 못 이겨 동생 거칠게 몰아세우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내가 한참 동생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을 때 나를 제외한 가족들과 항공사 직원은 머리를 모으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한참을 의논하고 있었다.


항공사 직원이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를 걸자 그녀의 상사로 보이는 남자 직원까지 합세해 한참 동안 PC 앞에서 고군분투하더니 비로소 해결해 주었고 그제서야 우리 가족은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기내에 앉아 아까의 상황을 돌이켜 생각해 보던 나는 이내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약 30여 분의 시간 동안 모두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모으고 있을 때, 나는 동생한테 짜증만 부린 것이다.


여행을 못 갈 수도 있는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 나란 인간은 화만 낼 줄 알지 아무 도움도, 해결책도 찾지 못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수치스러움에 고개를 푹 숙인 채 핸드폰을 꺼내어 친구에게 한 통의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성숙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것 같아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그러자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스스로 깨달았으니 됐어! 앞으로 현명해지면 돼"


자신의 어리석은 민낯을 마주한 나는 충격에 휩싸였고 그 사건을 계기로 현명해지기 위한 트레이닝을 꾸준히 해왔는데


애초부터 나는 이 트레이닝에 상당히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타고난 기질이 예민해 감정 기복이 심했고 매사의 상황을 감정적으로 접근하니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업무적으로 얽힌 누군가와 협의점을 찾지 못하면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고, 애인과 이별이라도 하면 세상이 다 무너진 것처럼 중심을 잃고 방황했다.


나는 매일같이 분노하고 슬퍼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다.


마치 괴로움을 느끼기 위해 돈을 투자하는 것처럼 상당히 비효율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을 분석해 보니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짜증, 분노,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시간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빨랐다. 이렇게 빠른 시간 동안 감정 처리가 가능한 이유는 감정을 에너지라는 하나의 재화로 보기 때문이다.


기쁨, 분노, 슬픔과 같은 다양한 감정은 마음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원재료로 만들어지는데 우리는 매 순간 에너지를 한 곳에 선택하여 쓸 수밖에 없다.


분노와 기쁨을 동시에 느낄 수 없고, 이성적인 사고와 감정적인 사고의 회로를 동시에 돌릴 수 없듯이


현명한 사람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좀 더 투자가치 있는 쪽으로 선택해서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7년 전 공항에서의 나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의 긴박한 골든타임 동안 문제 해결에 에너지를 쓰는 대신, 동생을 향한 분노에 모든 에너지를 탕진했다.


어리석음으로 가려진 좁은 시야 때문에 분노라는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야를 확장하는 트레이닝을 해나가면서 점차 현명해질 수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띄게 변화한 건 슬픔과 분노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쏟았던 에너지를 재빨리 해결책을 탐색하는 에너지로 변환하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한 거다.



이렇게 지극히 감정형 인간이었던 내가 위기 상황에서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울 수 있는 사고형 인간이 되기 위해 고안한 트레이닝은


내가 비련의 주인공이 된 이 실제 상황을 드라마라고 가정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드라마를 볼 때 3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전체적인 스토리의 흐름과 반전, 마지막 결말까지 유추해 보는데


절망적인 상황 속에 있다면, 감정의 늪에 빠지기 이전에 비련의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마치 드라마의 관객이 된 것처럼 3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전체적인 화면으로 상황을 볼 수 있는 시야 확장 트레이닝을 꾸준히 해야 한다.


상황을 3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트레이닝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통찰력이 생긴다.


그동안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던 부정적인 감정에서 한결 자유로워지고 비로소 자신의 마음 에너지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렇게 가장 효율적인 곳에 쓰인 에너지들이 매일매일 복리처럼 쌓여 누적되면 인생은 훨씬 풍요로워진다.




다산 정약용의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한두 끼 굶고, 비쩍 마르거나 한 끼 배불리 먹고 금세 표가 나는 것은 천한 짐승들의 일이다.


상황의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는 것은 군자의 몸가짐이 아니다. 이랬다 저랬다 감정의 기복이 잦은 것은 내면의 수양이 그만큼 부족한 탓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들뜨고 가라앉지 마라. 세상을 다 얻은 양 날뛰지도 말고, 세상이 다 끝난 듯 한숨 쉬지도 마라.


바람이 불어 흔들 수 있는 것은 표면의 물결뿐이다. 그 깊은 물속은 미동조차 않는다. 웅숭깊은 속내를 지녀 경박함을 끊어라




당신의 수양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가?  


작은 바람에도 요동치는 물결의 표면 위에서 휩쓸리고 있는가?


아니면 웅숭깊은 곳에서 차분히 바람이 부는 방향을 살펴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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