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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율 Apr 30. 2023

몸뚱이가 전재산인 사람

내가 절대로 아프면 안 되는 이유


"손서율씨 들어오세요"

종합검진센터 검사실로 들어와서 윗옷을 벗고 있는데 간호사가 이야기했다.


"아직 젊은 나이라 유방 조직이 치밀해서 어차피 검사해도 잘 안 나와요 그래도 하시겠어요?"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해야죠"

"검사할 때 많이 아프실 거예요 기계에 몸을 가까이 붙이세요"


기계에 몸을 붙이자 간호사가 한쪽 가슴을 우악스럽게 잡아서 기계 틈 사이에 넣었고 기계는 점점 좁혀지더니 터트릴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압력으로 끝없이 누르기 시작했다. "악!!!!" 나는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아팠으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40대 이하는 권유하지 않는 검사인데도 굳이 하겠다고 해서 이렇게 생고생을 한다. 그 외에도 위내시경, 대장내시경을 포함해서 할 수 있는 검사의 옵션은 모조리 넣었다.




"와! 서율씨 책상 봐 약국이야"

팀장님이 말하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내 자리에 와서 영양제들을 구경한다. 비타민C, 오메가3, 유산균, 스피루리나, 마그네슘.. 눈에 보여야 잊지 않고 챙겨 먹어서 책상 한켠에 약통이 가득하다.


"서율씨는 진짜 건강하게 살고 싶나 봐"

"그럼요~ 오래 살아야죠! 팀장님도 비타민 하나 드세요"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내가 이렇게 건강에 집착하는 데는 슬픈 사정이 있다.

내 몸이 어디서 왔는지 출처를 전혀 모르니 모든 병에 미리 철저하게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병원에서 받아보는 문진표의 가족력 체크란은 항상 공백으로 제출해 왔는데 사정을 모르는 병원에서는 작성하지 않은 이유를 매번 캐묻곤 했다.


"여기 왜 작성 안 하셨어요?"

"가족력을 몰라서요"

"가족분께 물어보시고 작성하시면 되잖아요"

"입양이라서 정보를 몰라요"

"아..."


게다가 12년째 1인 가구로 살아가면서 나는 절대로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식중독에 걸린 날 위가 뒤틀리는 고통에 배를 부여잡고 뒹구는데 핸드폰을 찾을 힘도 없어 앰뷸런스조차 부르지 못한 적도 있었고


길을 걷다가 차에 치였는데 가해자가 가족들을 병원으로 부르더니 보험사를 부르지 말고 20만 원에 합의를 보자고 몰아붙였다.

보다 못한 의사가 격분해서 "환자분! 환자분도 보호자 불러요!" 하는데 부를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평일 근무시간에 친구를 먼 곳까지 부르기엔 너무 미안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차에 치인 다리를 붙잡고 홀로 맞서야 했다.


나는 절대로 절대로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다. 내가 누워있으면 병원비와 생활비를 대신 충당해 줄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동안 나라는 지지대 하나로 버텨왔으니 내가 부러진다면 모든 게 무너질 것이다. 이렇게 몸뚱이가 전 재산과 다름없으면 건강관리에 집착하게 된다.




"어..? 왔다!"

종합 건강검진 결과가 이메일로 와있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열어서 읽어보았는데 다행히 건강 상태는 대체적으로 양호한 편이었지만 문제의 유방조직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다. 초음파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잡혀서 재검사를 해보라는 소견이었다.


심장이 철렁해서 친구에게 그 분야의 유명한 권위자를 추천받아 전문병원으로 예약해 두었다. 예약이 너무 많아 한 달 뒤에 방문했는데 의사가 초음파를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 저는 절대로 아프면 안 돼요 진짜 끝장나요 제발 별일 없다고 해주세요'


나의 간절한 기도에 의느님이 응답하셨다.

"여기 그림자 진 부분이 의아해서 정밀하게 살펴봤는데 다행히 별거 아니네요 암으로 발전하지 않을 겁니다. 그냥 두시면 사라질 거 같아요 1~2년에 한 번씩 정기 검진하러 오세요"


그 말은 나에게 이렇게 들린다.

"다행히 이번에도 인생은 무너지지 않았네요, 당신은 별 탈 없이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걱정 말고 열심히 사세요!"


"후...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건 아프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넘어 인생을 다시 이어나가게 해 주신 거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이렇게 내 인생은 모닥불처럼 활활 타오르다가도

한순간에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진다.


비록 손잡이만 돌리면 언제든지 타오르는 가스불처럼 든든하지는 못한 인생이지만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이어온 불씨를 보며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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