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잊지 못할 괴상한 추억

오사카/교토 여행기

by 손서율



"오사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17년 늦가을이었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서 아직 게이트 밖으로 나가기도 전인데 벽면에 대문짝 만한 한글로 환영의 플랜카드가 걸려있었다.


보자마자 그대로 돌아나가 도쿄행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마치 명동에 갓 입성한 중국인이 된 기분이었다. 도쿄에서의 추억이 좋아서 오사카 여행을 결심했는데 막상 와보니 내 스타일과 거리가 멀었다. 거리엔 온통 오버스러운 3D 모형들의 간판이 즐비했다. 타코야끼 집은 문어 모형이, 스시집은 스시 모형이, 털게 집에는 커다란 털게 모양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세련미는 찾아볼 수 없는 한껏 과장되고 원초적인 표현들로 가득한 도시였다.


오사카 또한 혼자 왔는데 5박 6일이나 잡았다. 목표는 미식이었다. 일본 음식을 워낙 좋아해서 열심히 먹기 위해 왔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도시의 느낌들이 내 취향이 아니라서 약간 실망스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오사카 여행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줄은 그것도 아주 괴상한 기억으로 말이다.




다행히도 오사카가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라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와서 대부분의 숙소를 오사카시 옆 교토시에 잡아두었다. 교토에 도착해보니 한국인이 훨씬 적었다. 교토는 전통 일본 가옥과 신사가 가득한 한국의 삼청동 같은 느낌이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미리 알아두고 온 스시집에 가서 스시를 원 없이 먹었다. 일본에 가면 가장 좋은 점이 고퀄리티 스시를 한국보다 1/3 저렴한 가격에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니시키 시장 안에 있는 신사에 들려 소원도 빌고 명물인 두유 도넛도 먹었다. 마감 직전에 가서 도넛이 다 식어 있어 별 기대 없이 먹었는데 동공이 확장되는 놀라운 맛이다. 숙소에 가면서 편의점에 들려 그리웠던 '스파클링 사케 미오'를 사들고 들어왔다. 지금은 한국에서 구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수입이 안돼서 도쿄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은은한 달달함에 적당한 탄산이 들어간 맛있는 사케다.


니시키 시장의 명물 '두유 도넛'
은은한 단맛에 스파클링이 들어간 맛있는 사케 '스파클링 사케 미오' 현재는 국내에서도 구입 가능하다.


여기까지는 평화로운 여행이었다. 내 2년 된 아이폰6가 말썽을 부리기 전까지는


그때는 늦가을이라 날씨가 꽤 쌀쌀했는데 기온이 조금만 낮아져도 아이폰 배터리가 완충에서 순식간에 빨간색으로 변했다. 멀쩡했던 아이폰이 일본에 오자마자 그동안 안 부렸던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보조 배터리에 항상 꽂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숲 속에 있는 긴카쿠지(은각사) 신사를 찾았다. 한참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순식간에 배터리가 빨간색으로 변하더니 꺼졌다. 가방을 뒤적여 보았는데 아뿔싸.. 보조 배터리를 숙소에 두고 나왔다. 아이폰으로 보던 구글맵과 일본어 번역기도 모두 사라졌다. 나는 숲 속의 신사에서 한순간에 국제 미아가 된 것이다. 기가 막혀서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오사카에서는 그렇게 흔하던 한국인이 아무도 안 보였다. 카페를 가려해도 지도를 못 보니 갈 수 없어서 추위에 떨면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때였다 옷 스타일이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인 남자 둘이서 빠른 걸음으로 휙 지나갔다. 생존이 걸린 일이라 망설일 수도 없었다.


"저기요! 혹시 한국 사람인가요?"


"네?? 네! 맞아요"


"죄송한데요.. 핸드폰 보조배터리를 빌릴 수 있을까요? 제가 핸드폰이 꺼져서 지금 미아가 돼버렸어요"


"아... 큰일이네요 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저 신경 쓰지 마시고 관광 편하게 하세요 멀리 떨어져 걸을게요"


그들이 사진을 찍을 때 내가 옆에 있으면 민망할까 봐 한참 멀리 떨어져서 걸었다. 꽤 오랜 시간 충전기에 꽂아놔도 애꿎은 폰은 켜질 기미가 안 보였다.


은각사를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그들은 내가 너무 딱해 보였는지 고맙게도 먼저 동행 제안을 했다.


"딱 봐도 배터리 다시 꺼질 거 같은데 그냥 같이 다닐래요? 저희 옆에 금각사 들렸다가 저녁 먹으러 갈 건데 어때요?"


어떻긴..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큰절을 올리고도 남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그들을 졸졸 따라다녔다.


은인이 된 그들은 울산에서 왔다고 했다. 나이도 비슷한 두 살 터울 오라버니들이었다. 키도 훤칠하고 잘생기고 성격도 호탕한 동행이 두 명이나 생겼다.


전 여자 친구한테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아와서 사진 찍는 건 자신 있다면서 시키지도 않은 사진도 열심히 찍어 줬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핸드폰도 하루 종일 보조 배터리에 꽂아놔서 덩달아 에너지가 빵빵해졌다.


저녁은 오코노미야끼와 야끼소바에 시원한 생맥주를 곁들이고 아까 신사에서 만난 해프닝에 대한 수다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나는 교토에서 이틀간 일정이 더 남아있었고 그들은 다음날 아침 오사카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사카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다시 홀로 남은 교토, 보조 배터리를 잊지 않는다면 걱정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폰이 꺼지기 직전에 찍은 긴카쿠지(은각사)
위기에서 구해준 그들과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다음날 보조배터리에 핸드폰을 종일 꽂고 다녀서 무사히 하루 일정을 모두 마쳤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서 짐을 더 가볍게 덜고 술 한잔하러 나왔다. 미리 사둔 교통카드가 있으니 이걸로 돌아올 때 버스비로 내면 되고 동전 지갑에 술값으로 쓸 엔화만 따로 챙겨 나왔다. 술 한 잔 하고 오는 거니 술값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교토 시내로 나와 굽이굽이 외진 골목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일본 드라마 심야 식당과 정말 비슷하게 생긴 작은 이자카야가 보였다. 한국인은 절대 안 올 것 같은 완벽한 로컬 술집이었다.


나무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니 바 형식으로 되어있는 테이블에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주인이 한껏 웃으며 인사했다.


"이랏샤이 마세!(어서 오세요)"


"곤방와! 나마비루 구다사이 (안녕하세요 생맥주 주세요)"


특이하게도 반찬가게처럼 안주가 바 앞에 큰 보울에 쌓여 있었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 초반 장면에서 센의 부모님이 돼지로 변하는 식당처럼 음식이 앞에 한가득 쌓여있다.) 메뉴판 볼 것도 없이 이거 이거 손으로 가리키면 바로바로 담아주셨다.


안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옆 옆자리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까부터 매우 신경 쓰였던 야쿠자같이 생긴 아저씨가 기어이 술잔을 들고 내 옆에 와 앉았다.


"한쿡 사람?"


"네 한국 사람이에요"


"나 칸코쿠 교포 3세 한국어 조금, 살았어 일본에서 평생"


몇 가지 아는 단어 만으로 열심히 말을 건네는 그는 재일 교포 3세로 일본에서 태어나서 평생 일본에서 살았다 했다. 한국어는 간단한 단어만 아는데 평소에 사용할 일이 없었지만 따로 공부했다고 한다. 알고 봤더니 이 동네 근처의 파친코 사장님이셨다. 외모가 전직 야쿠자라는 게 심히 의심됐다. 입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험상궂은 눈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


"예쁘다 예쁘다"


그가 뚫어져라 쳐다보며 계속 이야기하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본까지 와서 성희롱을 당해야 하나 짜증이 났지만 그가 무서워서 애써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내가 시킨 안주가 나오자 그는 이거보다 더 맛있는 게 있다면서 본인 돈으로 안주를 시켰다. 시키지 말라고 손사래 쳤지만 소용없었다.


그가 시킨 건 이름은 모르겠지만 진한 미소시루에 고기와 야채 곤약면 등이 들어 있었는데 달큰하고 구수한 게 한국 된장국의 일본 버전 같았다. 어서 먹어보라는 격한 끄덕임에 마지못해 한술 뜨곤 맛있다고 말하자 그는 환하게 웃었다. 정말 음식은 맛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옆에서 턱을 괴고 빤히 쳐다보는 파친코 사장님이었다. 어느새 여주인과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두 명도 와서 나의 먹방을 관람하고 있었다.


관객 세명 앞에서 먹방을 찍다 보니 어느새 늦은 시간이 되어 장소 이동을 할 수도 없어서 챙겨 온 엔화를 이곳에서 모두 탕진했다. 이제 교통카드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계산을 마치고 충전기에 꽂아 놓았던 핸드폰을 꺼내봤는데 켜지지 않았다. 계속 충전을 하고 있었는데 이럴 리 없었다. 급하게 가게 충전기를 빌려 꽂아 보아도 핸드폰은 켜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 상황은

1. 가지고 온 엔화 술값으로 모두 탕진

2. 전 재산 교통카드 한 장

3. 마스터카드/비자카드 숙소에 있음, 엔화와 교통 카드만 동전지갑에 따로 챙겨 나온 상황

4. 핸드폰 아무리 충전해도 안 켜짐 (사망 추정)


결론적으로

나는 전 재산이 교통카드 한 장뿐인 국제 거지에 버스를 어디 가서 타야 하는지도 모르는 국제 미아가 돼버렸고 한국어로 도움을 요청할 데는 단어 몇 개로만 이야기하는 매서운 눈빛의 전직 야쿠자 출신 같은 파친코 사장님이 전부였다.


내가 새파랗게 질려서 핸드폰 전원 버튼을 미친 듯이 눌러대고 있었더니 그가 아이폰 수리 센터를 찾아보고는 약도를 그려주며 교토에는 센터가 없으니 오사카로 넘어가야 한다고 내일 본인이 차로 태워줄 테니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아이폰 수리는 둘째고 당장 숙소 가는 길도 몰랐다. 꽤 멀리 떨어진 숙소라 이름을 대도 다들 몰랐고 단어 몇 가지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파친코 사장님이 택시비를 주겠다고 했다. 택시를 타면 목적지만 말하면 되니 지도를 못 봐도 찾아갈 수 있다.


대신 그는 조건을 걸었다. 가게가 곧 마감하니 가게 사람들과 회식을 할 건데 같이 가면 택시비를 준다고 했다.


그는 여주인과 아르바이트생 두 명을 불러 회식을 하자고 급 제안을 했고 그들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인이 하는 말은 가게 마감을 하고 따라갈 테니 둘이 먼저 선발대로 가있으라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그와 둘이 나갔다가 어디로 끌려갈지 모른다. 로컬 식당의 로망을 찾다가 정말 한국인이 아무도 없는 곳에 왔더니 위기 상황에서 같은 국적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를 따라나가던가 길거리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그를 따라나섰다.




가게를 나와 더 외진 골목으로 굽이굽이 들어갔다. 일본어가 적힌 홍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 어떤 건물 앞에 섰는데 그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더니 따라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간판이 모두 일본어니 위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주춤거리니 그는 답답하다는 듯이 빠른 손짓으로 재촉했다.


할 수 없이 따라 올라오니 특이한 구조의 가라오케가 나왔다. 그곳은 룸으로 따로 분리되지 않은 가라오케였는데 모든 손님들이 홀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함께 들었다. 그 가라오케는 노부부가 주인이었는데 두 분 다 인상이 좋으셨다.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놓였다.


파친코 사장님의 단골가게인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더니 그가 일본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하자 노부부는 동시에 "헤에에에~칸코쿠진?"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애써 웃으면서 인사를 나눴다. 핸드폰이 사망한 후 멘탈이 나가 있어서 영혼이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부담스럽게 내 옆에 꼭 붙어 앉더니 자기는 가수 이수영의 팬이라서 이수영 노래를 불러달라며 마이크를 내밀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택시비를 무조건 받을 수 있는 운명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수영 노래를 모창처럼 똑같이 부르는 능력이 있었다. 친구들이 나를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노래방을 가게 되면 음색이 똑같아서 신기하지 않냐며 이수영 노래를 시킬 정도였다.


그 많은 한국 노래 중에 내가 가장 숨 쉬듯이 편안하게 잘 부르는 가수의 팬이라니 이보다 택시비 값을 잘 치를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간절한 소망을 노래로 승화하니 주인 노부부와 파친코 사장님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며 스고이를 외쳤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기다려도 여주인과 알바생들은 오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둘밖에 없는데 파친코 사장님은 점점 취해갔다. 그래도 노부부가 테이블 옆 카운터에 함께 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났을 무렵

여주인과 알바생들이 가라오케에 도착했다. 웬 종이 박스를 여러 개 가져왔는데 열어보니 모두 타코야끼였다. 가라오케에서 함께 먹으려고 타코야끼를 구워왔다고 했다. 그제서야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풀어지면서 취기가 올라왔다.


타코야끼 박스를 열어보니 가쓰오부시는 커녕 아무 소스도 안 뿌려져 있었고 동그란 타코야끼 구운 반죽뿐이었다. 파친코 사장님은 이렇게 먹는 게 더 맛있다고 했다. 하나 집어먹어 보고 깜짝 놀랐다. 소금으로만 간한 것 같은데 한국에서 먹었던 소스 가득 뿌리고 가쓰오부시를 한껏 올린 타코야끼와 비교가 안됐다. 처음 먹어보는 본토의 찐맛이었다. 한국에 와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소스 없이 해달라고 해서 먹어봤는데 아예 반죽의 질감부터가 다르다.


타코야끼를 우물거리면서 택시비는 언제 주시려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파친코 사장님이 점점 취하면서 행동이 거칠어졌다. 술잔을 쾅 내려놓거나 신이 나셨는지 언성도 높아지고 행동 범위가 커져서 무서웠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까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 일본 노래와 일본어 속에서 너무 지쳐 숙소에 가고 싶었다. 알바생이 이제 그만 보내주자 말한 건지 그와 잠시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는 지갑에서 4천엔을 꺼내 주었다.




나가서 택시를 잡고 숙소 이름을 대니 바로 출발했다. 엔화만 더 챙겨 왔어도 이런 생고생을 안 했을 텐데 택시에서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다. 무일푼에 숙소로 돌아가는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여행 내내 그놈의 아이폰 컨디션에 따라 그날의 내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로비로 들어왔는데 로비 한켠 라운지에서 어떤 남자가 핸드폰을 보며 타마고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있었다. 느낌이 왠지 한국인 같았다.


택시에서 울어서 눈 화장이 한껏 번진 채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한국 사람이에요?"


"헛 네! 맞아요 여기 숙소에 한국 사람이 또 있었네요? 반가워요"


그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자마자 서러움이 북받쳐서 그를 붙잡고 으아아앙 울어버렸다. 타마고 샌드위치를 삼키기도 전에 날벼락을 맞은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일본어들 속에서 집에 갈 수 있는지, 어디로 끌려가는 건 아닌지, 택시비는 주는 건지 눈치만 보다 와서 한국말을 들으니 긴장의 끈이 탁 풀리면서 눈물이 터져 버렸다.


그는 한참 나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다가 핸드폰을 꺼내 보라 하더니 자기 충전기를 꺼내서 꽂아 두었다. 그러고 나서 이런저런 말을 걸었는데 그와 이야기하다 보니 눈물이 차츰 사그라들었다.


몇 분 뒤 대화 중에 갑자기 그가 소리쳤다.


"엇!! 핸드폰 켜졌어요!!! "


나는 사자후처럼 벌떡 일어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2002년 월드컵 때도 이런 환호성을 지르진 않았다. 영원히 사망한 줄 알았던 아이폰이 갑자기 부활한 것이다.


나는 너무 기뻐서 벌떡 일어나 폴짝폴짝 뛰어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나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다가 몇 분 뒤에 환호성을 지르며 뜀박질을 해대던 내 모습이 그의 눈엔 정말 무서웠을 것 같다...


핸드폰 부활 기념으로 그와 맥주 한 잔으로 축하 파티를 하고 헤어졌다.




핸드폰을 켜봤더니 신사에서 은인이 돼준 울산 오라버니들에게 카톡이 많이 와있었다. 답장이 없으니 핸드폰이 꺼진 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동안 있었던 고생담을 이야기해 줬더니 내일 당장 오사카로 넘어오라고 했다.


핸드폰이 언제 다시 기절할지 모르니 그들과 함께 다니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의 일정에는 오사카 유니버셜스튜디오가 없었는데 그들은 내일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는 일정이라 계획도 없던 놀이동산에 가기 위해 입장권 구입을 알아보았고 핸드폰이 꺼질 경우를 대비해서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해두고 약속을 잡았다.


다음날 시한폭탄 같은 아이폰을 손에 쥐고 꺼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놀이동산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다. 너무나 반가웠다. 더 이상 핸드폰이 꺼지든 말든 상관없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막상 와보니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오사카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셋이서 놀이기구도 타고 츄러스도 먹고 퍼레이드도 보고 사진도 찍었다.


어젯밤은 지옥 같은 하루였는데 오늘은 이렇게 신날 수가 없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여행은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을 단 며칠 안으로 압축해 놓은 것 같다.


여행에 따라 다른 인생, 다른 팔자로 살게 되는데 오사카 여행은 아이폰이 꺼지고 켜지는 거에 따라서 어제는 울고 오늘은 웃는 롤러코스터 같은 팔자다.


오사카 도톤보리 글리코 상의 포즈를 따라 하는 중 (그들과 함께한 오사카는 즐거웠다.)




그들과 그렇게 이틀을 함께 여행하고 내가 오사카를 떠나기 하루 전날 오라버니들이 먼저 출국했다. 여행은 만남과 이별 또한 단 며칠 사이에 빠르게 이루어진다.


그들과 함께 할 때는 신나던 오사카에 다시 혼자 남겨지니 쓸쓸해졌다.


혼자 여행하는 게 좋아서 혼자 왔지만 혼자 남겨질 때마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사람이 고팠다.


여전히 정이 붙지 않는 오사카를 떠나 다시 교토로 돌아왔다. 쓸쓸한 마음에 예쁜 기모노를 입어보았더니 기분이 풀렸다.

예쁜 기모노를 입고 교토 거리를 산책하니 쓸쓸한 마음이 사라졌다.

기모노를 입고 교토의 거리를 산책하던 도중에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뜬금없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급하게 처마 밑으로 피해 비가 그치길 기다렸는데 얼마 뒤 비가 또 금세 그치더니 거짓말처럼 선명한 무지개가 하늘에 떠있었다.


무지개를 보면서 깨달았다. 나에겐 장난기 가득한 수호신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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