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된 사회생활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by 손서율


오후 6:03

노트북 오른쪽 하단에 떠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어? 퇴근시간이네"


"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노트북을 접는데 갑자기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단 1초, 노트북을 접는 행위로 퇴근이 완료된 것이다.


미어터지는 만원 지하철 속에 몸을 구겨 넣고 저려오는 다리로 한 시간 거리를 버텨내던 지난 9년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트루먼쇼 같았다.


"지금까지 당신은 9년간 사회생활 개고생쇼에 출연하셨습니다. 사실은 재택근무로도 아무 이상 없이 세상은 잘 돌아갔지만 당신은 이 쇼에 출연하기 위해 9년이나 회사까지 굳이 출근하며 개고생 하셨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당신이 삽질하는 걸 지켜보며 빅재미와 교훈을 얻었습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얼떨떨해진 나는 이야기한다.

"그럼 제가 얻은 건 뭐죠..?"


"뭐긴요? 그냥 삽질하신 거죠~ 하하하"

방청객들의 깔깔거리는 소리에 머리가 하얘지며 이 9년간의 사회생활 개고생쇼는 막을 내린다.


이런 황당한 상상을 하다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온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도입되면서 우리 회사의 직원 2/3는 사무실에 항상 없다. 회의는 90% 이상 화상회의로 진행되고 있고 심지어 워캉스라고 회사와 제휴되어있는 호텔은 평일 할인까지 직원들에게 지원해 준다. 기분 낼 거면 싸돌아다니지 말고 아늑한 호텔에 박혀서 재택근무를 하라는 취지이다.


이제는 모두가 익숙해진 비대면 시대

회사에 안 가면 큰일 날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세상은 아무 이상 없이 잘만 돌아간다.


그럼 내 9년간의 사회생활 개고생쇼는..?


10년이란 시간은 강산까지 변한다는데 일주일의 7일 중에 5일이나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월급쟁이가 느끼는 강산의 변화는 기업문화다. 세상 물가는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 하지만 기업문화만큼은 확실히 엄청나게 발전했다.


라떼엔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미개한 문화가 가득했다. 남자 사원들은 심심하면 정강이를 발로 까였고 여자 사원들은 성희롱과 성추행에 시달렸다. 회식 때 음주 강요는 당연했다. 소주잔에 조금이라도 술이 남으면 저 새끼 밑장 깐다며 핀잔을 들었다.


이런 격동의 개고생쇼에 함께 출연한 나와 같은 80년생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이들은 나이가 들고 대리나 과장급 짬밥을 달아도 습관성 군기로 인해 지금도 팀장이 헛기침하며 "오늘 점심 함께 먹을 사람 없나?" 하면 가장 먼저 일어나서 "가시죠~ 팀장님 저번에 좋아하셨던 국밥집으로 모실까요?" 같은 자기의식과는 상관없는 학습된 자동화 기능 멘트를 날린다.


비교적 선진문화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90년생 사원급들은 자신의 의사 표현이 확실해서 내키지 않으면 들은 체도 안 하고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다.


난 그들이 참 부러울 때가 많다.


학창 시절부터 사랑의 매(?)가 일상이었고 미개한 기업문화 속 노예 생활이 익숙한 80년생들을 주무르던 상사들은 개인의 행복과 자유가 우선인 90년생들이 입사하기 시작하면서 혼돈을 겪게 되는데 그래서 요즘 서점에 가보면


"90년생과 일하는 방법"

"90년생과 갈등 없이 잘 지내는 대화법"

"90년생과 어떻게 일할 것인가"


같은 책들을 매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한세대만 차이나도 삶의 질이 달라진다.


하지만 너무 억울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9년 동안 사회생활 개고생쇼를 하며 얻은 건 분명 있으니까




어린 시절 나는 독종이었다.

하고 싶은 게 제지당하면 맞으면서도 해야 했다. 우리 집은 꽤 엄한 편이었는데 초등학교 때는 오후 5시까지가 귀가시간이었다. 친구네 집에서 안전하게 놀고 있다고 전화를 걸어도 소용없었고 나는 그냥 쿨하게 전화를 끊어버리고 한두 시간 더 놀다가 집에 들어가서 두들겨 맞았다.


이 패턴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져서 항상 양껏 놀고 들어가서 두들겨 맞는 게 일상이었다. 내가 신나고 행복해하는 지금의 흥이 깨지는 것보다는 귓방망이 몇 대 맞는 게 더 나았다.


그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밥을 꼭 먹어야 했던 나는 아침에 느긋하게 진지를 잡수시고는 학교에 도착하면 항상 지각이었다. 지각한 벌로 교복 치마를 돌돌 말아서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운동장에서 오리걸음을 하곤 했는데 그 와중에 아침밥을 먹고 아침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등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나만의 소중한 아침을 거르는 게 더 싫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으면 맞아서라도 했고

하기 싫으면 맞아서라도 안 했다.

그렇게 맞고 살아도 맷집은 한결같이 늘지 않아서 남들 열 대 맞으며 두 번 쉴 때 나는 다섯 번을 쉬어가며 맞았다.


대학에 가도 마이웨이 인생은 변함이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동기들이 학과 선배들을 보며 90도로 목청껏 인사할 때 나 홀로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지나갔다.


"지네가 등록금을 내줬어 밥을 사줬어 언제 봤다고 선배님이야~ 나는 내 갈 길 가련다"


체벌이 만연한 중고등학교 때도 마이웨이였는데 대학은 나에겐 그냥 비싼 돈 주고 다니는 학원 같았다. 졸업장을 따기 위해 다니는 비싼 학원에서 하는 선배님 놀이가 나에겐 유치해 보일 뿐이었다. 선배들도 이런 나를 결국 포기했다.




이렇게 아무리 두들겨 패도 제멋대로 살아야 직성이 풀렸던 내가 지금은 자의적으로 한 시간 전에 출근을 하는 나름 성실한 인간이 되었는데 부모님도 학교도 해내지 못했던 이 엄청난 일을 회사가 해냈다.


두들겨 패지도 않는 회사가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을까?


부모님과 학교는 나보다 더 성숙하고 이성적이었다. 나를 교화시키려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철없이 제멋대로인 망아지 캐릭터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막상 회사에 와보니 나보다 훨씬 더 제멋대로인 망아지(x) 망나니(o) + 초특급 꼰대 상사 밑에서 일해야 했고 말을 듣지 않으면 쿨하게 귓방망이 몇 대 맞고 끝나는 게 아닌 밥줄에 위협이 가해지니 버티지 않을 수 없었다.


안락한 학교와 다르게 이 바닥에서 먹고살려면 하기 싫어도 참고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나흘 연속 점심 메뉴로 동태찌개를 먹어야 할 때도 있었고


퇴근시간이 되어 인사를 돌리면 가방을 다시 자리에 놓고 오라고 하더니 갑자기 말도 안 되는 파일철을 시킨다던가


열두 명이 입을 댄 소주잔에 술을 따라줘서 잔을 바꿔달라 하면 깔끔 떤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고


매일 사무실에서 하는 아침 체조시간에 정장 치마를 입고 하는 체조가 싫어 화장실에 숨어있으면 어김없이 팀장 면담을 해야 했으며


워크숍으로 가장한 소주파티에 강제로 끌려와 주방에서 무수리처럼 종일 상추를 씻다가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게다가 아침부터 딱히 이슈 없는 면담을 핑계로 커피숍에 끌려 나와 아빠뻘 팀장과 강제 모닝 데이트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생활 개고생쇼로 인해 나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


하기 싫은 일을 꾹 참고 끝까지 해내는 인내와 끈기, 여러 가지 타입의 꼰대 상사를 대처하는 각종 처세술을 배웠고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며 다양한 유형의 인간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사람 보는 눈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하기 힘든 거절이나 싫은 소리들을 환하게 웃으며 농담처럼 말할 수 있는 빙썅(빙그레 쌍년) 권법도 탑재되었다.


게다가 죽일 듯이 싫은 상사 옆에서 매일 함께 하다 보니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법까지 깨닫는 경지에 이르렀다.


만약 내가 10년 늦게 태어나 2021년 선진기업문화와 비대면 시대인 지금, 막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면 10년이 지난 2031년이 되어도 깨달을 수 없던 것들이다.




트루먼쇼의 다른 결말을 다시 상상해 본다.


"지금까지 당신은 9년간 사회생활 개고생쇼에 출연하셨습니다."


사회자의 이야기에 나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이야기할 거다.


"그동안 저의 사회생활 개고생쇼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비싼 댓가를 치렀지만 그만큼 얻어 가는 게 많았습니다. 9년간 이 쇼에 출연하면서 깨달은 것들로 남은 50년은 훨씬 더 현명하게 살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방청객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로

이 9년간의 사회생활 개고생쇼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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