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살아보기

3개월간의 강원도 도피생활

by 손서율



2012년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고작 스물다섯 살이었던 나의 인생은 상처투성이였다.


돈은 많이 주지만 체계 따윈 없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퇴사하고 나서도 퇴직금 금액이 맞지 않아 한참을 회사와 실랑이해야 했다.


게다가 당시에 만났던 남자 친구와도 자주 다투게 되었는데 화해를 하자고 오랜만에 만난 날 그의 외투 주머니에서 처음 보는 쓰다만 콘돔 박스가 나왔다.


회사와 남자 보는 안목이 지지리도 없었던 어리석음의 댓가는 너무나 혹독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고 혐오스러운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막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친구가 보다 못해 이야기했다.


"y가 지금 강릉에 있잖아 몇 달 동안 내려가서 쉬고 오는 건 어때?"





y는 내 중학교 절친이었는데 그녀는 강릉에 있는 모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도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흔쾌히 내려오라고 했다.


그렇게 뜻밖에 강릉에서의 도피생활이 시작되었다.


강릉은 항상 바다를 보러 갔던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의 도피 생활을 제멋대로 상상했는데 눈을 뜨면 창밖에 푸른 바다가 보이고 매일 아침 해변에 나가서 산책을 하다 바다 앞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는 여유로운 일상들을 상상했다.


그러나 막상 강릉에 도착해보니 내가 상상했던 일상은 환상일 뿐이었다. 바다는 차로 30분은 더 들어가야 볼 수 있었고 조교 월급으로 생활했던 y는 석사 생활을 존버하기 위해서 캠퍼스와 한참 떨어져 있던 외진 곳에 저렴한 자취방을 얻어서 생활했는데 거리가 먼 건 둘째고 귀가 길이 정말 험난했다.


비포장도로의 흙길 양옆에는 깊은 또랑이 있었고 사방이 논밭이었는데 마치 영화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시골길과 흡사했다. 어두운 밤에 그 길을 걷다 보면 영화처럼 또랑에서 연쇄살인마가 숨어있다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기나긴 길을 전속력으로 뛰어서 귀가했다.




어느 날은 y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논길을 걷는데 나보다 훨씬 큰 네발 짐승이 유유히 걸어 나오더니 우리 앞을 막아섰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시 송중기가 주연인 '늑대소년'이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었는데 며칠 전에 그 영화를 봐서 그랬는지 어둠 속의 네발 짐승이 늑대같이 보였다.


y는 내 뒷덜미를 잡아 일으키며 태연하게 말했다.


"야 일어나 고라니야"


"아..... 어엉"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그녀를 겨우 잡고 일어났다. y는 여기서 지내면서 고라니를 심심치 않게 보았다고 했다. 나는 고라니를 동물원이나 뉴스에서가 아닌 길거리에서 난생처음 보았는데 야생동물이 길거리를 어슬렁 거린다는 게 문화충격이었다.


그나마 귀갓길이 덜 무서운 날은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길에 눈이 새하얗게 쌓이면 달빛에 눈이 반사되어 조명이 없어도 사물이 환하게 보여 시야가 확보됐다.




놀라운 강릉 생활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여름휴가로만 왔던 강원도에서 처음 맞는 겨울은 상상초월의 폭설로 매번 놀라웠다.


아침에 나오면 현관문 앞에 내 키만 한 높이의 눈이 쌓여 있었는데 집을 나서기 위해서는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차가 지나가면서 눈을 밀어내야 겨우 걸을만한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샤워를 하는데 소름 끼치게 차가운 얼음물이 쏟아져 내렸다. 아무리 수전을 온수 쪽으로 돌려보아도 온수가 나오지 않아 벌벌 떨면서 출근한 y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온수가 왜 안 나오는 거야? 추워 죽을 것 같아"


"아 그거 기름이 떨어졌나 봐 옆에 세탁실 가면 기름 넣는 곳 있어 기름통 옆에 있으니까 거기다가 부으면 돼~ 많이 무거울 텐데.."


"기름이라니? 기름을 왜 부어? 온수라니까?"


나는 기름을 부어서 온수가 작동되는 시스템을 난생처음 보았다. 기름은 차에 주유하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줄 알았다. 옷도 방에 벗어 두고 와서 그 추운 한파에 알몸으로 세탁실에서 벌벌 떨면서 무거운 기름통을 들고 씨름을 하다가 현타가 몰려왔다.


사람 키만큼 눈이 쌓이는 폭설과 길거리에 어슬렁거리는 고라니들, 주유를 해야 온수가 나오는 집이라니 정말 어메이징 한 강원도였다.




게다가 착하고 마음 여린 y는 나 하나 걷어 키우는 걸로 부족했는지 학교 복학생 놈이 토이푸들 한 마리를 분양받아 놓고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느라 파양 신세가 된 푸들을 대신 키우겠다고 데려왔다. 무책임하게 y에게 떠넘긴 주제에 이름은 또 하트로 지어놨다.


그래서 y의 자취방에는 y와 나와 하트가 함께 살게 되었는데 하트는 아직 어린 푸들이라 무한 에너지와 패기가 넘쳤다. 이 간장치킨 같은 작은 생명체는 점프도 잘하고 어찌나 날쌘지 개가 아니라 곤충이라고 할 정도로 날아다녔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밥상에 올라가 초토화시키는 하트가 가끔은 매우 피곤했지만 그래도 귀여워서 용서가 됐다.


그러나 y는 나와 하트로도 부족했는지 집 앞에 어슬렁대던 길고양이까지 데려왔다.


"요즘 날이 너무 춥잖아 얼어 죽을까 봐 걱정돼서 데려왔어 날씨 풀릴 때까지만 집에 있게 하자~"


그 길고양이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집 앞에서 맴돌며 우리가 나올 때마다 졸졸 따라다녔는데 대체 이 엄동설한에 어디서 무얼 먹고 다니길래 저렇게 덩치가 클 수 있는지.. 하도 살이 쪄서 마치 문신한 사람이 뚱뚱해지면 문신도 함께 커지듯이 얼룩무늬의 가로 폭이 엄청 넓었다. 고양이 라기보다는 짬타이거라는 새로운 변종 같았다.


짬타이거는 뚱뚱한 몸과 다르게 얼굴은 살쾡이같이 매섭게 생겼는데 내가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껏 크르릉 거리며 꼬리를 치켜세우자 숨겨져 있던 시커멓고 커다란 똥구멍이 보였다.


"으아아악 똥구멍이 왜 이렇게 커!!! 저기서 박테리아 몇억 마리는 나올 거 같아 목욕은 시킨 거야..?"


"대충 씻기긴 했어"


"대충? 당장 내보내!!!"


"오늘 내일이 제일 춥데 이틀 뒤에 내보낼게 그때까지만 좀 참아"


y가 고라니까지 집에 들이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위로하며 이틀간 함께 지낼 새 식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로써 겨우내 y의 자취방엔 세 명의 식구가 새로 생겼다. 툭하면 놀라는 인간 한 마리와 곧 날 수 있을 것 같은 토이푸들, 점점 더 뚱뚱해져만 가는 짬타이거까지.. 모두 상처 받은 영혼들이었다.




강릉에 온 목적은 현실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쉬기 위함이었지만 나는 도통 쉬는 법을 모르는 인간인지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기엔 심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면 외로운 타지 생활에 활력이 생길 것 같아 강릉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강릉 시내에 있는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옷 가게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손님의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고도의 심리게임이었다.


나는 손님에게 붙어서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하수들의 방법 따윈 쓰지 않았다. 옷을 고르는 손님 옆에서 신상 코트를 입고 이리저리 거울을 보다가 손님이 지나가는 동선에 자연스럽게 걸어두면 곁눈질로 보던 손님들은 그 코트를 집어서 입어보곤 계산대로 가져왔다.


손님이 혼자 옷을 대보며 고민하면 무심하게 지나치면서 "저와 같은 쿨톤이신가 봐요? 소라색이 잘 받으시네요" 같은 멘트 한마디를 툭 던지고 사라졌다. 이런 츤데레 권법은 팔려고 하는 직원 같은 느낌보다는 같이 쇼핑하러 온 친구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나만의 노하우였는데 생각보다 잘 먹혀서 나의 고정 컨셉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려고 소소하게 시작했던 옷 가게 아르바이트는 가게의 매출이 오르고 월급도 덩달아 오르면서 점점 판매에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고 가벼운 아르바이트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아침 11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하루의 절반을 빡세게 근무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회식까지 따라가 경포대 앞바다에서 회에 소주 한 잔 야무지게 걸치고 얼큰하게 취한 채로 귀가했다.




일주일에 하루뿐인 쉬는 날마저 y의 학교에 가서 그녀의 학교 친구들을 만나 어울렸는데 당시 활동하던 가수 fx의 크리스탈을 닮았다는 이유로 서리스탈(본명+크리스탈)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강릉의 서리스탈은 복학생들과 친해진 뒤로 퇴근길에 집까지 안전하게 차로 귀가할 수 있었는데 y는 밖에 차 소리만 듣고도 오늘은 누가 데려다줬는지까지 알아맞힐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무도 모르는 타지에서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처럼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책을 읽는 고독한 요양생활을 하러 왔는데 괴로운 건 별개고 나는 그렇게 얌전히 살 수 있는 위인이 못 됐다.


회사 다닐 때는 엄두도 못 냈던 주 6일제에 하루 11시간 근무 게다가 일주일에 하루뿐인 쉬는 날마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다니


"이상하다.. 분명히 쉬러 왔는데 왠지 더 빡세게 사는 기분이야"


가끔 혼자 의아해하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 알 수 없는 도피(?) 생활은 교통사고로 3개월 만에 끝이 났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우산을 들고 갓길로 걸어가는데 어떤 차가 쌩 지나가면서 내 한쪽 다리를 치고 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넘어졌는데 차는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슬금슬금 서행하는 게 아닌가?


넘어진 채로 우산을 집어던져서 트렁크에 명중하자 그제서야 정차했다. 절뚝거리며 다가가 창문을 두드렸더니 어떤 아주머니가 창문을 열고 태연하게 "무슨 일이에요?"라며 묻는데 핸들을 잡은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급하게 부르더니 병원에 가서 이해 못 할 행동을 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빵을 한 아름 사 와서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돌리며 잘 부탁드린다고 하더니 나에게는 보험사를 부르지 말고 20만 원에 합의를 보자고 으름장을 놓았다.


의사는 아주머니를 보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그만하세요 아주머니 이런 거 안 받습니다." 하고 빵 봉지를 밀어내고는 나에게 소리쳤다.


"환자분 보호자 어딨어요? 어서 보호자 데려와요"


강릉에서 당장 보호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y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학교에서 일하며 수업을 듣느라 정신없을 텐데.. 나는 그녀에게 차마 와달라고 전화를 걸 수 없었다.


무연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타지에서 느끼는 한계였다.




그렇게 나는 3개월 만에 원래 나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고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 2주간의 재활치료로 회복이 되었다. (물론 보험처리도 야무지게 했다.)


퇴원 후 얼마 뒤에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고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다. 비싼 값을 치르고 안목을 키웠으니 회사나 남자 친구나 훨씬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새롭게 시작했다.


그 후 9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런 의문이 들었다.


"단지 도피하기 위해 떠났던 강릉에서 왜 이리 열심히 살았을까?"


그건 아마도 실패해서 떠나온 진짜 나의 삶은 잠시 접어두고 "서리스탈"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로 다시 열심히 살아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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