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자 친구가 해준 요리

4년간의 전쟁 같은 연애 후 얻어먹은 밥상

by 손서율



"주 파나마 대한민국 대사관입니다."


"여보세요? 제 남자 친구가 파나마에서 실종된 것 같아요 파나마에 가고 나서 일주일 동안 연락이 끊겼거든요"


대사관 직원에게 그가 근무하고 있는 현장과 소속을 이야기하니 30분도 안 돼서 파나마 어딘가에서 총 맞아 죽은 줄 알았던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것도 멀쩡한 목소리로


"미안해 감사가 들어와서 수습하느라 연락할 틈이 없었어"


다른 커플들은 술 마시다 연락이 끊긴 2시간 동안의 진위 여부를 가지고 싸울 때 나는 그가 죽은 줄 알고 대사관에 국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런 남자랑 4년이나 연애를 했다.



그는 나보다 다섯 살 연상으로 기존에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고 아버지가 경영하시는 플랜트 사업을 이어받을 때쯤 나를 만났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바쁠 때였다. 일 년의 절반은 아부다비, 파나마, 사우디, 베트남 등에 있었다. 우리는 다른 시간 속에서 보이스 톡으로 통화하는 게 더 익숙했다.


그가 귀국하는 날에는 떡볶이를 자주 먹었다. 그는 해외에서 오래 있다 오면 분식이 가장 먹고 싶다고 했다. 몇 달 만에 만나는 데이트라서 이태리 식당에 가고 싶었지만 한국 음식이 그리웠을 그에게 항상 메뉴를 양보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도 일주일에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데이트는 그가 일을 마친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호텔에서 만나서 룸서비스를 시키거나 그것마저 늦어서 없을 때는 편의점에서 맥주와 주전부리를 사 와서 밤새 머리를 맞대고 낄낄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대화가 시작되면 매번 밤을 꼬박 새워 이야기하다 출근하기 일쑤였다. 그는 아침에 미팅에 늦어도 항상 나를 회사까지 꼭 태워다 주고 갔다.


외동으로 자란 그는 아버지의 플랜트 사업을 이어받으면서도 어머니가 하시는 부동산 사업도 함께 경영했고 본인 사업도 따로 벌여서 지금은 초기에 투자했던 필라테스 사업이 잘 되어 전국에 10개가 넘는 지점을 내면서 큰 수익을 올렸다. 몇 번의 사업 아이템을 실패한 경험을 토대로 사업 수완을 키워나가더니 결국 본인만의 사업을 만들어 냈다.




그는 가지고 싶은 게 생기면 꼭 손에 넣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차를 좋아했던 그는 차를 바꾸는 주기가 내가 핸드폰을 2년에 한 번씩 바꾸는 주기보다 더 빨랐다.


폭스바겐 골프를 타던 시절에 만났는데 얼마 뒤에 아우디 S7으로 바꾸더니 얼마 안 가 레인지로버로 바꾸고 추가로 포르쉐까지 샀다. 레인지로버를 타다 돌연 팔아버리고 이번에 또 지바겐을 샀는데 그는 타보고 싶은 차가 생기면 반드시 사야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서울에 한강뷰가 보이는 아파트를 사더니 이번엔 여수에 본인 소유의 건물을 지어 인테리어에 한창 열을 올렸다. 예전부터 나에게 말했던 그의 플랜들이었는데 현재는 모두 현실화됐다. 그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이뤄내는 대신 인간관계를 포기했는데 그중 하나가 나였다. 데이트는커녕 전화 통화마저도 항상 그가 시간이 날 때만 이루어졌다. 내가 마음이 외롭거나 몸이 아플 때 그에게 전화를 걸면 열에 아홉은 받지 않았다.


연애를 하고 있어도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다녔다. 그래도 그를 사랑해서 버틸 수 있었지만 결국 나를 무너뜨린 이유는 그에겐 나의 기다림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없었다.


"내가 딴짓하는 것도 아니고 일하느라 못 만나는 건데 왜 미안해 해야해?"


그의 말은 내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한 성격 하는 나도 그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냈다.


"네가 돈 벌어서 내 생활비를 줬어 뭘 했어 너 쓸려고 버는 건데 왜 나한테 안 미안해?"


그렇게 우리는 열 번 정도 헤어졌던 것 같다. 헤어지면 항상 그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첫마디는 "독한년" or "나쁜년"이었다.


나는 그가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는 일상이 익숙했지만 그는 나를 찾을 때마다 항상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나의 부재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다.


그가 너무나 미웠지만 이상하게 "독한년" 한마디에 웃음이 나와 무장해제됐다.


4년간의 연애 끝에 한계가 온 나는 결국 그에게서 떠났다. 그 후 각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했고 시간이 흘러 둘 다 다시 싱글이 됐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그에게 연락이 왔는데 어머니가 담낭암에 걸리셔서 병원에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린 일 년 반 만에 대학병원 로비에서 다시 만났다.


"왜 이렇게 늙었어? 혼자만 계속 늙어"

"너도 늙었거든? 지는 뭐 안 늙은 줄 알아"


그에게 장난스러운 농담을 했지만 사실 마음이 아팠다. 순수한 의도로 병문안을 와 줄 사람이 나밖에 없을 걸 잘 알아서다. 그의 주변은 모두 비즈니스로만 얽힌 인맥뿐이다.


나 말고도 아는 변호사 형님이 어머님과 함께 먹으라고 도시락을 거하게 싸왔다길래 돈이 얽힌 사이냐 물었더니 역시나 그가 형님의 로펌에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결국 수지 타산이 가득 담긴 도시락이었다.


그에게 암에 좋은 최상급 러시아산 차가버섯 티를 건넸다. 효과에는 좋지만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백화점 창고 신세였던 물건을 어렵게 공수해왔다.


차가버섯에는 수지 타산 대신 지난 4년간의 의리(?)가 담겨 있었다. 그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연인 사이였을 때는 들을 수 없던 말이었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큰 수술을 잘 마치시고 무사히 퇴원하셨고 그는 나에게 직접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며 집으로 초대했다. 이별하던 날 전쟁을 치렀던 그의 집에 다시 올 준 몰랐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황금색 베어브릭 대형 피규어가 눈에 보였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본인 공간에 내가 머물 틈을 주지 않았으면서 크기도 다양한 베어브릭 곰 새끼들이 그의 집안 곳곳에 상주하고 있는 걸 보니 꼴 보기 싫었다.


그의 집은 여전했다. 욕실 선반을 열면 각종 브랜드의 화장품들로 가득한 올리브영이 나오고 냉장고를 열면 편의점처럼 각 맞춰 나열한 맥주와 음료들이, 드레스 룸에는 명품 옷들과 액세서리로 가득 메워있고 주방 한켠에는 어떤 기집애랑 마신 건지 술도 못하는 주제에 발베니들과 생소한 칵테일 리큐르들로 빼곡히 나열되어 있다.


이렇게 인생에 콘텐츠가 많으니 연애가 그의 인생에서 비중이 적을 수밖에.. 일만 하느라 연락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그가 집을 사고 처음 왔을 때 쇼핑하느라 연락을 안 했구나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아직도 이런 것들이 꼴 보기 싫은 걸 보니 헤어진 지 2년이나 흘러서 사랑의 불씨는 꺼졌지만 그에게 애증이 얼마나 깊었는지 분노의 불씨는 잔잔하게나마 남아있었나 보다.




그는 좀 전까지 급하게 장을 보고 와서 재료 손질을 하고 있었다. 영수증을 보니 무려 27만 원이나 썼다.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그가 나에게 요리 한 번 해준 적 없었는데 병문안을 와준 게 무척이나 고마웠는지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 정성을 다해 요리하고 있었다.


그가 음식을 만들어 왔는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웬만한 브런치 카페 수준으로 플레이팅에 자신 있는 내 눈에도 놀라운 비주얼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이 브런치 카페라면 그의 음식은 파인 레스토랑 수준이었다.


최상급 꽃등심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잔뜩 예열된 팬 위에 기름과 버터 한 통을 다 넣어 녹인 뒤 튀기듯이 구워내고 마지막에 토치질로 마무리했다.


플레이팅을 할 때에는 가니쉬를 따로 만들지 않고 고급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트러플을 곁들였는데 스테이크와 함께 먹으니 가니쉬보다 훨씬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남동이나 청담동에 내놓으라 하는 스테이크 전문점보다 더 맛있었다.


이어서 버터구이 전복을 올린 봉골레 파스타도 면은 완벽한 알덴테로 익히고 면수에 소금을 생각보다 많이 넣는데 그게 면에 간이 짭조름하게 베이면서 밖에서 사 먹는 파스타 맛이 났다. 파스타 플레이팅까지 나보다 한수 위였다.


샐러드는 치즈와 견과류, 올리브를 올리고 이탈리안 드레싱을 곁들였는데 내가 만든 샐러드보다 더 고급스러웠다.


후식으로는 킹스베리 딸기를 내왔는데 휘핑크림을 꺼내와 흔드는 그의 모습은... 마지막까지 센스 그 자체였다.


그의 노고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울화가 치밀었다. 웬만한 요리사보다 요리를 더 잘하는데 4년 만난 애인한테 밥 한번 해주지 않았다니.. 한껏 성질이 나다가도 감사하기도 하고 밥상 앞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도 나를 보면 이런 마음일까?


그날 우리는 오래된 친구처럼 옛날이야기들을 디저트 삼아 와인 한잔하고 헤어졌다.


스테이크 재료로 최상급 꽃등심에 올리브 오일과 소금 후추로 시즈닝 해두었다.
완벽한 미디움 레어 굽기로 완성된 그의 스테이크
봉골레 파스타에 버터구이 전복을 올렸다.
고급스러웠던 그의 홈메이드 샐러드
킹스베리 딸기 위에 휘핑크림을 올릴 수 있을 만큼 뿌린 센스




그 후 몇 개월이 지난 저번 주 금요일 밤, 오랜만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는데도 끈질기게 울려대는 핸드폰의 등쌀에 못 이겨 받았다.


"어~"

"작가님 안녕하세요"

"네 독자님 글 잘 읽고 있나요?"

"잘 읽고 있지요"

"요즘 한가하신가 봐요 염탐은 꾸준히 하시네요"

"바쁘지만 할 건 해야죠"


그에게 글을 쓴다고 연락한 적도 없는데 그동안 열심히 염탐을 해와서 나의 근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는 왜 글에 자기 이야기가 없냐고 따졌다. 자기가 내 인생에서 그렇게 비중이 없었냐고 어서 본인을 글에 등장시키라고 100페이지를 쓰면 30페이지는 자기가 등장해야 되지 않냐며 따져 묻는데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나도 캐릭터가 확고하지만 그는 독보적이다.




우리의 실없는 대화들은 분명 사랑의 형태는 아니다. 그는 나와 재회할 생각도 없으면서 매번 주기적으로 연락을 해서 왜 생존 신고를 하는지 그동안 의문이었는데 글에 본인을 등장시키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젠 알 것 같다.


지난 6년간 그가 물질적인 것들로 삶을 채워 나가느라 인간관계를 포기했을 때 순수하게 그를 기억하고 곁에서 머문 사람은 가족 외에 딱 한 사람, 나였다.


그에게 나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기억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자 추억이다.


내 기억 속에서 그가 서서히 잊히는 게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일보다 그에겐 더 두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부릴 때의 사무적인 모습이 아닌 컵라면을 먹으며 밤새 머리를 맞대고 낄낄대던 순수했던 그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잊혀져 가는 거니까


본인이 등장하는 글을 당장 써내라고 때 쓰다 말고 그는 수화기 너머로 나즈막히 말했다.


"고마워"

"뭐가 고마운데?"

"아니야~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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