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만 갈 수 있는 놀이동산

한정되어 있는 인생을 재미있게 보내는 방법

by 손서율


자본주의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장소 중 하나는 의외로 동심으로 가득한 놀이동산이다.


빅 3, 빅 5처럼 입장권 금액대에 따라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횟수를 선택할 수 있고 자유이용권을 구매하면 모든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다.


해외 놀이동산은 자본주의가 더 심하다.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익스프레스 패스권을 구입하면 줄 서지 않는 VIP 통로를 이용해 남들이 몇 시간이고 줄 서서 기다리는 인기 있는 놀이기구를 바로 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금액을 더 많이 지불하고 더 부지런히 움직 일수록 더 많은 놀이기구를 타볼 수 있다.


우리 인생은 단 한 번뿐이 갈 수 없는 놀이동산 같다. 놀이동산의 입장과 폐장 시간은 이번 생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며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다양한 놀이기구를 탈 수 있듯이 인생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어차피 삶은 놀이동산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다. 가장 소중한 건 내가 그곳에 머물면서 어떤 추억을 만드느냐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20대 시절에 가장 후회되는 게 무엇인지 물으면 돈도 명예도 아닌 배낭 하나 메고 세계 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대학 시절 내가 술과 갖은 모임들로 젊음을 즐길 동안 같은 과 동창인 친구는 교환학생을 신청하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지내며 학교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수업을 듣고 주말이 되면 틈틈이 러시아를 여행했다.


그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방학기간을 활용하여 유럽, 중동, 동남아 등 세계 곳곳을 배낭을 메고 여행했다. 여행 경비를 아껴 더 많은 나라를 가보기 위해 배낭에 잼을 싸 들고 다니며 가장 저렴한 빵을 사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그 나이밖에 할 수 없는 시간과 체력, 여행 스타일이다.


내가 지금 세계 여행을 하려면 회사를 퇴직해야 하고 이미 나이가 들어버려 가방에 잼을 챙겨 다니며 끼니를 때우고 싸구려 숙소에 묵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놀이동산이 폐장하기 전에 나는 반드시 세계 여행이라는 이 거대한 스케일의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놀이 기구를 꼭 타봐야겠다. 회사를 은퇴하게 되면 배낭을 메고 세계 여행에 도전할 거다.


비록 배낭여행을 아직 해보진 못했지만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황금연휴를 이용해 국내로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단순한 여가 생활이 아닌 세상을 보는 시야와 나의 세계관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나에겐 반드시 주기적으로 타야 하는 놀이기구이다.




여행 말고도 여러 재미있는 놀이 기구가 있다.

그중에 우리가 매일 같이 행하고 있는 미식에 대한 경험도 포함된다.


회사에서 일 년에 한두 달가량 해외 거래처가 방한하는데 저녁 접대 자리를 다들 불편해서 피하려고 하지만 나는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파인 레스토랑을 열심히 따라다녔다. 롯데 호텔의 피에르 가니에르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와인 페어링까지 인당 40만 원이 넘는 디너 코스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드레스코드가 스마트 캐주얼이라 해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용도가 다양한 식기와 직원 세분이서 내 자리 테이블 정돈을 수시로 도와주시는 것도 모두 부담스러웠지만 두고두고 잊지 못할 멋진 경험이었다.


반대로 낡고 허름해도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식당은 발품을 팔아서도 방문해본다. 부산에 가면 자주 방문하는 곰장어 집이 있는데 자갈치 시장 한복판 생선을 손질하는 가판 뒤에 낡은 테이블을 두세 개를 놓고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다. 애인을 한번 데려간 적이 있는데 외관을 보더니 질겁을 했다. 그래도 그 집 곰장어는 한 입만 먹어도 눈물 나는 맛이다. 멀고 허름하다는 이유로 찾아가지 않았다면 인생 맛집이라는 신나는 놀이기구를 놓칠 뻔했다.


그 외에도 인생이란 놀이동산에는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많다. 보고 싶었던 전시회를 보러 간다든지 인생 영화나 책을 찾아내서 영감을 얻는다든지 다양한 사람과 여러 번의 연애를 걸쳐 소울메이트를 찾는다든지 흥미로웠던 레저를 직접 경험하며 나의 신체 능력을 알아낸다든지....




부유한 사람들은 익스프레스 패스권을 구입하여 줄을 서지 않고 프리 패스로 다양한 멋진 경험들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 같은 평범한 서민도 노력하면 자유이용권 정도는 내 힘으로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이용권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어도 자발적으로 빅 3, 빅 5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저축을 해야 해서 여행은 포기했어"


"내 주제에 무슨 프렌치?

삼겹살에 소주나 먹지 뭐"


"어디 나가면 돈 써야 하고 붐벼서 싫어

동네가 제일 좋지"


"남자끼리 무슨 전시회? 술이나 먹을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도 다양한 경험이 없다. 빅 3를 구입하고 놀이동산 폐장 시간까지 아껴가며 쓰는 경우다.


물론 단조롭고 심플한 삶을 추구하는 가치관도 존중하지만 단 한 번 밖에 올 수 없는 놀이동산에서 나에게는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올해 내 나이 34살, 특별한 사고가 없다면 1/3 정도 살아왔다. 놀이동산 운영시간이 보통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까지니 나는 놀이동산에 들어온 지 현재 오후 2시쯤 되었다.


폐장시간까지는 아직 8시간 남았으니 남은 시간 동안 자유이용권으로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모두 타보고 싶다.


중간에 나의 능력치가 상승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게 된다면 추가로 익스프레스 패스권을 구입하여 더 멋진 놀이기구를 힘들게 줄 서지 않고 타보려 한다.


폐장하면 다시는 올 수 없는 놀이동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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