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체리와 생체리는 둘 다 "체리"로 불린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주인공 마츠코의 인생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녀는 중학교 교사로 평범한 삶을 살던 도중 교내 남학생이 저지른 절도를 뒤집어쓰면서 어이없게 교사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그때부터 인생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직업을 잃은 그녀는 작가 지망생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동거를 하게 되고 끝없이 이어지는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마츠코는 그에게 매달린다.
어느 날 작가 지망생은 마츠코가 보는 앞에서 자살을 해버리고 오갈 데가 없어진 마츠코는 죽은 작가 지망생의 지인과 다시 사랑에 빠졌지만 그는 유부남이었다. 아내에게 이 관계를 들킨 유부남은 마츠코에게 평소 작가 지망생을 보며 가졌던 자격지심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그의 여자였던 마츠코를 만나온 거라며 고백하고 떠나버린다.
다시 홀로 남겨진 마츠코는 돈을 벌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되고 거기서 만난 기둥서방과 사랑에 빠져 그를 위해 매춘을 일삼으며 돈을 벌어 바친다. 그러나 기둥서방마저도 다른 여자가 생겨 마츠코를 배신하고 분노한 마츠코는 그를 우발적으로 살해해버린다.
살인자가 돼버린 마츠코는 물가에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이발사의 눈에 띄어 구조되고 그와 사랑에 빠져 이발소에서 함께 일을 하던 도중 체포되어 감옥에 가게 된다. 긴 감옥생활을 마치고 한달음에 달려간 이발소에서 마츠코가 없는 사이 다른 여자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 이발사를 멀리서 지켜보던 마츠코는 쓸쓸하게 돌아서버린다.
혼자가 된 마츠코를 찾아온 남자는 과거 자신의 교직을 박탈당하게 한 절도범 남학생이었고 성인이 된 제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만 조폭이었던 그의 여자로 살면서 도돌이표처럼 그를 위해 매춘을 하고 위험한 일들을 도우면서도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유흥업소에서 함께 일했던 마츠코의 유일한 친구 메구미가 찾아와 마츠코를 조폭에게서 구하려 하지만 마츠코는 지옥에 있더라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그게 나의 행복이라며 메구미의 손을 뿌리친다.
피멍으로 얼룩지고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거라고 처절하게 외치는 마츠코, 그녀가 외치는 사랑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괴이한 형태가 사랑에 포함될 수 있을까?
갑자기 이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어제 우연히 보게 된 동영상에서 한 여자 유튜버가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 바로 떠오르는 비슷한 인생이었다. 그녀의 사랑은 매번 그녀의 인생을 나락으로 내몰았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추상적 단어인 "사랑"의 정체는 뭘까?
우선 사랑의 범주는 너무나 포괄적이다. 사랑할 대상부터가 정해져 있지 않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남녀 사이, 동성연애, 반려동물, 심지어 하루 본 낯선 사람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다.
이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의 형태는 아름답지만 조금이라도 틀어진다면 아주 괴이한 형태로 변질된다.
"범죄자 자식을 감싸고도는 부모의 삐뚤어진 사랑"
"미성년자인 제자를 사랑해서 여자로 보는 스승"
"데이트 폭력으로 얼룩진 남녀 간의 사랑"
"연예인을 너무나 사랑해서 스토킹까지 일삼는 팬심"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불륜에 빠져 자식까지 버리는 비정함"
이렇게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아름답다가도 괴이해지기도 한다. 대체 이 알 수 없는 감정의 정체는 뭘까? 단순한 호르몬의 반응일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랑을 평생 갈구하며 살아가지만 슬프게도 사랑마저 빈익빈 부익부가 적용된다.
내가 말하는 사랑의 빈부격차는 단순히 사랑을 하는 횟수가 아닌 "사랑의 질"이다.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던 마츠코의 삶은 죽을 때까지 철저하게 불행했다. 그녀가 이런 불행한 사랑을 하게 된 배경은 부모님에 대한 애정 결핍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츠코의 부모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마츠코의 여동생을 돌보느라 온 신경을 쏟아서 마츠코는 유년시절 내내 홀로 외롭게 보내야 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한 번도 온전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마츠코의 인생은 초반부터 사랑의 빈익빈이 시작되었다. 진짜 사랑이 뭔지 모르는 마츠코의 세계에서는 수시로 날아오는 주먹질에 얼굴이 터지고 일그러져도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게 사랑이었던 것이다.
반면 건강하고 온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은 인생의 초반부터 사랑의 부익부가 시작된다. 변이 되지 않은 형태의 순수하고 질 좋은 사랑을 받아봐서 그런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인지하며 덕분에 평생을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랑만 골라하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
문득 내가 해왔던 사랑의 형태를 돌아보았다. 나의 사랑은 빈익빈인가 부익부인가.. 아마도 빈익빈 쪽에 가깝다.
"언니는 어쩜 이렇게 독립적이야? 남자한테 휘둘리지도 않고 주관도 뚜렷하고 현명하잖아?"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고 살던 나는 내가 주체적이고 건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회피형 애착 유형"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 또한 완벽하게 건강한 사랑을 하지 못했으며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나의 독립적인 모습들은 타인에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장벽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나에게 꾸준히 마음을 표현하며 항상 다정하게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지루함을 느껴서 관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웠고
가지기 어렵고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는 사람, 속을 도통 모르겠는 사람들을 골라 사랑했는데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겪는 가슴 끓는 속앓이들을 사랑의 감정으로 인지했다.
마츠코 세계에서는 물리적인 폭력까지 사랑으로 인지하듯이 나의 세계에서는 정신적인 고통을 사랑으로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내가 변이 된 질 낮은 사랑으로 마음고생하며 잠을 설칠 동안 온전한 사랑을 받아본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변함없이 서로를 아껴주며 지루하고 잔잔한 일상 속에서의 감사함을 함께 나누었다.
고통이 없는 세계를 지루하다고 느껴왔다니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이 틀림없다.
14년 전에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을 보며 "마츠코는 더럽게 운이 없는 여자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4년이 흐른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마츠코는 단순히 운만 없었던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 사랑을 맛본 적이 없어서 사랑의 맛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그녀가 만들어낸 맛을 사랑으로 인지해 버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랑은 마치 체리와 같다.
어린 시절 나는 생크림 케이크 위에 올라간 윤기가 흐르고 반짝이는 핫핑크색 체리가 진짜 체리인 줄 알았다. 다른 과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체리만의 특이한 향이 좋아 카페에 가서 체리콕을 시킬 때 체리를 가득 넣어 달라고 따로 주문을 할 정도였다.
20대 후반이 되고 나서야 수입된 생체리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검붉은 색에 초록색 꼭지가 달린 낯선 과일이었다. 맛 또한 내가 알고 있던 화장품 향 같은 독특한 향 또한 전혀 없었다. 과육의 자연스러운 단맛과 새콤함뿐이었다.
생체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나는 평생을 생체리 향과 전혀 다른 향의 합성향료와 합성색소, 정제수에 절여놓은 통조림 체리를 진짜 체리의 맛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달콤 새콤한 진짜 과육을 머금은 생체리의 맛을 알고 나서 다시 먹어본 통조림 체리는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합성향료와 설탕이 뒤섞인 역한 맛 일 뿐인데 난 그 맛이 좋다고 그동안 체리콕에 가득 담아 스푼으로 퍼먹었다.
나처럼 체리에게 배신당한 사람들은 제법 많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변이 되지 않은 진짜 체리의 맛은 생체리를 먹어본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진짜 생사랑은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 100퍼센트 고품질의 생사랑은 생사랑의 맛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끼리만 누리고 있는 특권이었다.
앞으로 고품질의 생사랑을 하기 위해서 나의 왜곡된 사랑의 세계에서 벗어나 보려 한다. 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무의식의 장벽을 뛰어넘어 나만의 세계를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평생을 불행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마츠코, 과거 불행했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현재도 불행한 사랑 중인 여성 유튜버를 보면 반복되는 불행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유아기 때부터 고착화된 애착 유형을 극복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순수 100퍼센트 생사랑을 하고 있는 예쁜 커플들 곁에 머무르며 보고 배워야겠다.
나의 고립된 세계를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 사람을 통해 영감을 얻는 거다.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세계관을 교류하기 때문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맛과 향, 생김새까지 전혀 다른 생체리와 통조림 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체리"로 불리운다.
순수하고 고귀한 형태의 사랑과 괴이하고 일그러진 형태의 집착은 부르는 사람에 따라 "사랑"으로 불리우는 것처럼
남은 인생은 진짜 생체리만 먹을 거고 진짜 생사랑만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