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꿀팁 처세술
"타인에게 베푼 만큼 돌려받지 못한다."
"내가 베푼 호의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요즘 내 주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고민이다. 보통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나의 기분을 무시하고 타인의 기분에 초점을 맞추는 게 특징인데 이건 나의 존재감을 스스로 무시하는 행위다.
나는 평소에 나를 모시고 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겉으로는 털털하고 둥글둥글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하고 싶은 것도 참 많고 은근 완벽주의라 매사에 까다롭다.
나를 모시고 산다는 개념은 나의 존재감을 스스로 크게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내가 나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면 타인들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준다.
반면, 내가 나의 존재감을 무시하면 타인들도 귀신같이 눈치채고 덩달아 무시한다.
예로 들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 생각났다. 대학시절 학교 동기 중에 4살 많은 언니가 있었는데 그녀는 만인의 엄마 같은 사람이었다. 당시 차를 가지고 다녔던 그녀는 매일 아침 등굣길에 강의를 함께 듣는 동기들을 픽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녀는 동기 한명 한명 찾아가는 서비스로 픽업했는데 매일 아침마다 엄청난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그녀의 호의가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렸다.
어떻게 이렇게 감사한 일이 당연시될 수 있었을까?
그녀는 거절을 못 하는 예스걸이였다. 누군가 부탁을 해오면 내키지 않아도 단번에 수락하고 나서 뒤에서 홀로 수습하며 끙끙 앓았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을 무시한 죄로 하고 싶지도 않았던 픽업 서비스를 매일 하면서도 고맙다는 인사조차 듣지 못하게 되었다.
단지 선행을 베푼 것뿐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녀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으면 자신의 결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수락해 버렸다.
반면, 나를 모시고 살고 있는 나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으면 yes라는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에게 결재를 받는다.
"마마~ 이러이러한 부탁을 받았는데 들어줘도 괜찮나이까?"
그럼 내 내면에 상주하고 계신 마마님은 도도하게 말씀하신다.
"응 그건 내키니까 해줘~"
"그 부탁은 내가 너무 번거로워지잖아! 싫어"
"애매하긴 한데 왠지 안 내키니까 반려할래"
나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나의 내면에 있는 마마님께 최종 승인을 받은 다음에 yes라는 대답을 한다. 이 과정은 나 자신의 존재감을 존중해 주는 행위이다.
이렇게 살면 남들에게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냐고?
아이러니하게도 "성격이 좋다", "강단 있다"라는 소리를 듣고 산다. 게다가 내가 베푼 호의는 부메랑처럼 대부분 다시 돌아온다.
까다로운 마마님의 승인을 받은 선행이라는 걸 상대방도 알기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 마마님께서 반려하신 부탁들은 상대방에게 반려당한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면서 이번 부탁은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다음에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정중하게 이야기한다.
다음에는 돕겠다 했지만 상대방에게 거절한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놓았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곤란한 부탁을 건네지 못한다.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신 있게 행동하면 친절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반대로 나의 결재를 거치지 않고 (나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고) 매번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어 회사에 재정팀의 결재 절차가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자 재정팀은 직원들이 쓰는 예산의 한도를 책정하고 법인카드가 올바른 용도로 쓰였는지 사용처를 확인한 후에 결재를 한다. 재정팀의 기준에 맞지 않아 결재가 반려된다면 예산을 사용한 직원은 개인 사비로 물어내야 한다.
만약, 이 결재 과정이 사라진다면?
모든 직원들은 법인카드를 개인적인 용도로 신나게 긁을 것이다.
처음엔 "이래도 되나?" 걱정을 하겠지만 결재자가 사라졌으니 문제 될 게 없다. 점점 죄의식은 사라지고 위법한 행위가 당연시될 수밖에 없다.
인간 관계도 똑같다. 누군가 나에게 선을 넘으려 할 때 명확한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면 상대방은 "이 사람은 결재 시스템을 거쳐야 되는구나"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된다.
그 뒤로는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에 부탁을 하게 되고 부탁을 들어준다면 결재자의 승인을 거쳐서 해주는 선행이라는 생각에 더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누구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고 자부하는 나도 예스맨과 연애를 하면서 감사함을 잊은 적이 있었다.
예스맨은 나보다 3살 연하였는데 나이도 어릴뿐더러 익숙한 생활 속에서 안정을 찾는 성향으로 인생 경험의 폭이 나에 비해 현저하게 좁았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데이트 장소, 저녁 메뉴, 여행 일정 등의 선택들은 대부분 내 뜻대로 이루어졌다. 그가 가져오는 플랜들은 내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는 나의 의견이나 요청들을 군말 없이 들어주었다. 그러나 가~끔 그가 "싫어"라고 반기를 들 때가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나는 싫다고 대답하는 그가 더 좋았다.
"싫어"라는 대답을 들으면 잊고 있었던 그의 존재감이 크게 부각되면서 그동안 대부분 yes였던 그의 대답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의 수많은 yes 속에는 싫어도 양보해 준 부분이 많았겠구나.. 그도 나름의 결재 과정을 거쳐서 나의 의견을 수용해 준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사람의 심리는 이렇게나 묘하다.
만약 지금 내 주변에 호의를 베풀어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무례하고 곤란한 부탁을 해오는 사람들이 많다면
주변을 탓하기 전에 내가 나라는 존재에게 어떤 대접을 하고 있는지부터 체크해 봐야 한다.
내 의사를 발언할 기회를 주고 있는지
혹시 내가 느끼는 기분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귀한 마마님으로 모시고 있는지
말 한마디 못하고 소처럼 일만 하는 노비로 취급했던 건 아닌지
"내가 나라는 존재에게 어떤 대접을 하는지 상대방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똑같이 나에게 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