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있나요?

구름 위에서 진짜 인생을 보고 오다.

by 손서율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륙 후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반드시 안전벨트를 착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20년 8월, 먹구름이 가득 끼고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제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동그란 창문에 쉼 없이 그려지는 빗방울들을 멍하니 들여다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토록 원했던 일도, 예쁘게 그려왔던 사랑도, 모두 실패한 인생에서 도망치듯 홀로 떠나는 여행..


이왕 우울할 거면 제대로 우울하라고 날씨마저 완벽하게 도와준다.


빗길을 가르며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이내 두둥실 떠오른다. 그렇게 하늘로 높이높이 날아오른 지 10분도 안되어 먹구름을 뚫고 구름 위로 올라왔는데 구름 위의 세상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음" 아무 군더더기 없이 새파란 하늘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쬔다.


땅에서 올려다볼 땐 무섭게 비를 토해내던 먹구름마저 막상 위에서 내려다보니 솜사탕처럼 하얗고 몽실몽실한 귀여운 형상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에서 가장 낮게 떠있는 구름이 만들어내는 날씨들을 올려다보며 그게 하늘의 전부라고 여겼던 나는 한낱 미물이었구나..


동그란 창문에 얼굴을 내밀어 진짜 하늘의 색깔을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푸른 바다 끝, 어렴풋이 보이는 수평선마저 없는 이곳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푸른 공간 사이사이에서 잔잔히 새어 나오는 햇살이 얼굴을 포근하게 감싸 온다.


여기가 구름이 가려 놓았던 진짜 하늘이었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제주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자리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구름 속으로 비집고 내려가 제주공항에 착륙하고 나니 2시간 전에 있었던 김포공항으로 다시 돌아온 듯 어두 컴컴한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나서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제주도에서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왜 웃냐고?




"구름 속에 가려진 진짜 인생을 보고 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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