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 못 깎는 중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처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by 손서율


가을바람이 코끝에 살랑이는 계절, 두 커플이 이별을 맞이했다.


상실의 아픔에 빠진 두 명의 여인들은 제 머리도 못 깎는 중을 찾아가 눈물을 쏟으며 조언을 구했는데 그 "중"은 바로 나다.


첫 번째 여인이 중에게 물었다.


"그는 평소에 왜 그리 나에게 소홀했을까? 그동안 오지 않는 그의 연락을 하루 종일 기다리기만 했어"


중은 대답했다.


"그에게 너는 찾을 때마다 언제든지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지, 예를 들어 주식으로 따지면 너는 삼성전자처럼 우량주였던 거야 오랫동안 묵혀놔도 안심되고 매일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존재..

반대로 그는 너에게 비트코인 같은 존재지 매분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니 한시도 그의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게 되는 거고.. 인간은 상대방을 시도 때도 없이 떠올려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인지하는데 비트코인처럼 일정하지 않은 그가 불안해서 너는 수시로 그를 떠올리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그걸 더 깊은 사랑이라고 인지한 거야"


첫 번째 여인은 중의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정말 맞는 소리야! 언니가 이 연애를 처음부터 말렸을 때 말을 들었어야 했어.. 애초부터 그는 나에게 열정이 없었지만 내가 억지로 이끌어온 연애였잖아? 언니 말대로 여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초반부터 정해진 판도는 뒤집을 수 없더라"


첫 번째 여인은 중의 이야기를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고 실패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다시 연애 시장으로 뛰어들어가 애초부터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남자를 만나서 행복을 되찾았다.




이윽고 두 번째 여인이 중을 찾아와 물었다.


"그가 나에게 집에 있다고 거짓말하고 술을 마시러 간 날 내가 영상통화를 아무리 걸어봐도 절대 안 받더라고.. 카톡만 답장이 오고.. 대체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중의 대답은 심플했다.


"딴 여자 만났나 보지, 전에도 걸린 전적이 있데며"


여인은 울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 없어! 지금 코로나도 심각한데 어디 가서 여자를 만나? 그리고 걔를 만나주는 여자가 어딨어 나나 만나 주지"


"코로나라도 만나려고 작정하면 못할 것 없지, 짚신도 바람필 구멍은 있어" 잔인한 중은 여인이 이별 위에 감싸 놓았던 "미련"이라는 포장지를 가차 없이 찢어버렸다.


인생은 오직 "사랑"이라고 외치는 여인에게 중은 이야기했다.


"너무 사랑만 쫓으며 사는 인생은 고통스러워, 인간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화하거든 슬프게도 모두가 너처럼 한결같진 않아"


여인은 눈물을 머금고 소개팅 어플을 뒤적였다.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잊어야겠어"


사실 땡중이었던 중은 옆에 누워 배달 어플을 뒤적이며 이야기했다.


"우선 네가 단단해지고 나서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게 순서야 너부터 마음이 고통스럽고 불안정하면 안정적인 마음을 가진 좋은 남자 눈엔 그런 부분이 단번에 보이니 너를 안 만나려 하겠지.. 그래서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거야.. 먼저 혼자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워봐 소개팅 어플 그만 보고! 뭐 시킬래? 치킨은 뭘 시켜도 배신하지 않아"


여인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쓱쓱 훔치더니 땡중이 시킨 치킨을 나눠먹으며 그에 대한 미련을 거두기로 결심했다.


언제 울었냐는 듯 치킨을 양손에 쥐고 야무지게 뜯던 여인은 식사가 끝나자 자신의 차에 중을 태워 중의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집 앞에 도착한 중이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여인이 중을 붙잡고 물었다.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너는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연애를 못해?"


중은 여인의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음... 너무 잘 알아서 못 하는 거야 "




제 머리도 못 깎는 중은 집으로 돌아와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사실 중은 오래전에 누구보다 가슴 뜨거운 사랑을 했었다. 그 사랑의 크기는 대단해서 몸집이 작은 중이 품기에는 너무나 버겁고 아팠다.


중은 사랑을 향해 모든 걸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하지만 중의 사랑은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결국 우량주처럼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안심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중의 슬픔은 사랑의 크기만큼 대단했고 중의 눈에서는 신체에 있던 모든 수분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눈물은 며칠간 도무지 멈출 생각을 안 하더니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안구건조증에 시달렸다.


중은 사랑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점점 현명해졌다.


심장이 찢겨나가는 상처를 입고서도 다시 연애 시장으로 다이빙하는 용감한 여인들과 다르게 더 이상 다칠 용기가 없는 중은 멀찌감치서 여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멀리서 바라보다 보니 여인들의 다이빙 자세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코치해 줄 수 있었다. 정작 본인은 겁쟁이라 다이빙대에 오르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여인들은 알까? 팔짱을 낀 채 한껏 훈수를 두던 중은 사실 여인들의 어리석음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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