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유독 노인 간호에 마음이 가는 간호사였다. 내가 유난해서일까?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늘 어머님, 아버님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분이 계신다.
2004년의 어느 여름날, 한 어머님께서 병원에 들어오셨다. 병원 안 화분들이 목이 말라 축 처져 있는 걸 보시곤, 종이컵에 정수기 물을 받아 물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니들은 목마르면 물 처먹으면서 식물은 말라 죽이니!”
어머님의 그 첫 한 마디는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깜짝 놀랐지만, 어쩌면 그 말은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나는 바로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었고, 그렇게 어머님과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어머님은 허리가 좋지 않으셔서 병원을 자주 오셨지만 주사는 비싸다며 늘 물리치료만 받으셨다. 한 달 내내 1,500원짜리 물리치료만 받는 그 모습에 안쓰러움이 밀려왔지만, 다가서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리시는 어머님의 발톱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발톱은 길게 자라 부러져 있었고, 나는 손톱깎이를 찾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머님의 반응이 두려웠지만, 내 손길을 순순히 받아들이셨다.
그 순간, 우리는 1일이 되었다.
어머님은 병원 화분을 돌보며 병원의 식구처럼 자리를 잡으셨고, 나도 어머님이 안 보이면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고 싶어질 정도였다. 어머님이 살아가는 환경이 궁금해져 어렵게 주소를 알아내어 시장에서 장을 봐 어머님 댁을 찾았다.
녹슨 대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차마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웠고, 어머님은 방 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계셨다. 오래전부터 보일러를 못 틀어 겨울이면 그렇게 생활하신다고 했다. 마음이 찢어질 듯했다.
어머님의 방에는 성모 마리아상과 내가 어머님과 찍었던 사진 한 장이 고이 놓여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로 여겨졌는지를 알게 되었고, 더욱 진심으로 어머님을 대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자녀가 네 분 계셨다.
딸 둘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들 하나는 정신병원에, 막내아들은 지적장애가 있어 어머님이 오히려 돌보셔야 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모든 걸 감당하셔야 했던 어머님은 가진 게 없다고, 나에게 줄 게 없다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날 위해 기도해 줘. 그거면 되잖아. 어머님 기도 잘하시잖아~ 응?”
그 이후 어머님은 나의 엑스 어머님이 되셨다.
나는 어머님을 딸처럼 챙겼고, 어머님도 나를 진짜 딸처럼 아껴주셨다. 병원 진료비도 몰래 면제해 드리고, 어디서 받은 것처럼 선물도 드리고, 치과 진료 때는 보호자 연락처에 내 번호를 적어드렸다.
하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 슬픔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나는 어머님을 챙길 여유도 없이 무너졌다. 말 한마디 없이 제주도로 떠났고, 몇 달 뒤에야 다시 어머님 생각이 났다.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무작정 수원으로 향했다. 겨울이었다.
어렵게 어머님이 다니시던 성당에서 그분을 만났지만, 어머님은 매몰차게 말씀하셨다.
“가. 무섭다. 매몰찬 사람…”
나는 말없이 울었다. 그리고 어머님도 돌아서며 우셨다
몇 해 전, 내가 사드린 털장화는 바닥이 다 닳은 채로 어머님 발에 남아 있었고,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결국 우리는 손을 맞잡고, 함께 밥을 먹으며 웃을 수 있었다.
내가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입혀드리고 장갑도 사드리며, “올겨울 따뜻하게 나요, 어머님.” 말씀드렸던 그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다시 제주로 돌아갔고, 삶의 소용돌이 속에 어머님을 또 잊고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수녀님을 보며 다시 어머님이 떠올랐고, 용기를 내어 수원 성당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들었다.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그 소식에 나는 한참을 울었다.
너무 늦었다는 사실이 나를 질책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한 번만 더 안아드렸다면…
한 번만 더 말했더라면, 사랑한다고…
이제는 내가 어머님을 위해 기도드릴 차례다.
그분께 받았던 귀하고 따뜻한 사랑,
살아 있는 동안 내게 닿을 수 있었던 가장 순수한 애정을,,, 내가 더 약한 이들에게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
어머님, 제 걱정은 이제 하지 마세요.
당신의 기도는 저를 충분히 지켜주셨고,
저는 지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제 인생에서 결코 ‘엑스’가 아닙니다.
제 마음속 가장 따뜻한 곳에,
영원히 살아 계신 ‘어머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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