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처음 만난 건 어느 늦가을 아침이었다. 위암 말기.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어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신 분이라 하셨다. 한때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치셨을 그분은, 이제 더 이상 아이들도, 칠판도, 교정도 없는 삶의 마지막 페이지 앞에 계셨다.
우리 병원에 오신 이유는 단 하나,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이었다.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진통제뿐. 그것도 마약성 진통제. 항문이 열려 기저귀를 차고 계셨고, 바짝 마른 몸에서는 혈관을 찾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난, 반드시 혈관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늘을 들었다. 그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두 달여를 병원에 오가시던 어느 날, 그분은 원장님께 조심스럽게 부탁하셨다. “집으로 와서 주사를 놔줄 수 있을까요?”
원장님은 정중히 거절하셨다. “간호사가 외부로 출장을 나가진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제가 가겠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시간에 내가 조금이라도 곁에 있고 싶었다.
그분의 집은 조용하고 오래된 집이었다. 아내분과 단둘이 지내시는 공간. 평생을 부지런히 살아오신 분들일 텐데, 환자가 있는 집안은 늘 그렇듯,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사이로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어머님은 거듭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 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아버님의 곁에 가 있었으니까.
요를 깔고 바닥에 누우신 아버님은 평소보다 훨씬 지쳐 보이셨다. 바늘을 꽂았는데 이상하게 수액이 혈관으로 흡수되지 않고 밖으로 새어 나왔다. 다시 혈관을 잡았지만,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그 순간, 내 마음 한구석에 싸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오늘 돌아가실 것 같아… 이상해……”
간호사로 살아오며 처음 느낀 예감이었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서만 느껴지는 미묘한 낌새, 설명할 수 없는 감정. 그걸 ‘촉’이라고들 한다. 나는 그 순간, 본능처럼 그 감정을 느꼈다. 그럼에도 애써 무시하며 웃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 또 올게요, 아버님.”
그렇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인계를 받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님에게서 오는 전화만 아니면 좋겠다…”
그 바람은 곧 깨졌다.
수화기 너머에서 어머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에… 돌아가셨어요…”
말없이 전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머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샤워도 못하시던 분이, 간호사님 다녀가시고 나서는 어떻게든 혼자 샤워를 하셨어요. 옷도 갈아입으시고, 깨끗이 누우셨는데… 그대로… 가셨어요.”
죽음을 앞둔 사람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식에게 편지를 쓰고, 어떤 이들은 미뤄둔 대화를 꺼내고, 또 어떤 이들은 깨끗이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세상을 정리한다.
그분도 그랬던 건 아닐까. 마지막 순간을, 단정하고도 평온하게 맞이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날 이후, 나는 다시금 간호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치료를 한다. 고통을 덜어준다. 그리고 때로는, 죽음을 함께 준비한다.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다.
어떤 고통도, 어떤 이별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조금은 덜 외롭다.
그리고 나는, 그날 그의 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