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에 입대한 그날, 나는 요가원에 등록했다.
텅 빈 마음을 어떻게든 메우고 싶었다.
기초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지도자 과정을 신청했고, 평일엔 200시간 수련, 일요일엔 다섯 시간씩 강의.
3개월 동안 숨 쉴 틈 없이 매트를 밟았다.
퇴근 후 모든 시간을 요가와 명상에 쏟았다.
그 시간들이 나를 붙잡아줬다.
엄마를 잃은 슬픔은 그렇게, 조용히 땀과 함께 흘려보냈다. 다행히 사랑하는 아들은 군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고, 나 역시 다시 병원 일에 적응하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요양원 검진팀에서 잠깐 일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 오기 힘든 어르신들을 위해 우리는 직접 요양원으로 찾아가서 검진을 하는 일이었다.
내 역할은 혈액 채취.
내가 가장 잘하고, 또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양원 어르신들은 대부분 고령이고, 혈관도 좋지 않다. 치매를 앓는 분들은 통증을 더 민감하게 느끼기에 피 한 방울 뽑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놀라운 건,
‘자식’이라는 말 앞에서는 누구보다 순해지신다는 것.
어느 날, 한 어머님이 울며불며 손사래를 치셨다.
“안 해! 아파! 싫어!!”
나는 요양보호사님께 그 어머님의 아드님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어머님께 다가가 말했다.
“어머님,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런데요, 영석 씨가 검사 꼭 해달라고 돈도 내고 가셨어요. 안 하셨다고 전해드릴까요?”
그 순간, 칭얼대던 어머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우리 아들이 돈 줬어? 에구 내 새끼…
엄마 생각하는구먼. 효자야, 효자.
선생님, 나도 피 뽑아줘요.”
치매로 세상을 잊은 어머님이 ‘아들’이라는 단어 하나에 정신을 붙잡으신다. 아주 잠깐이지만, 분명히 돌아오신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평생 짝사랑처럼 가슴에 품은 존재, 그게 자식이고…
그래서 엄마는, 엄마다.
요양원 일을 하면서 나는 결심했다.
나는, 이곳에서 내 마지막을 맞고 싶지 않다.
물론 좋은 시설도 있지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하루 종일 멍한 눈빛으로 자식을 기다리며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 영혼 없이 퀭한 눈빛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 나는 매일 수십 명의 암환자들과 만나며,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보다 편안하게,
보다 따뜻하게.
그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 수 있도록 정서적 교감에도 마음을 쏟는다.
나는 내 일이 좋다.
간호는 나에게 ‘이키가이’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이유.
언제까지 간호사로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오늘, 지금 이 순간이다.
그래서 오늘도,
아빠가 세상에서 주사 제일 잘 놓는다고
자랑하던 간호사 딸은, 감사한 마음으로 일터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