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정은 틀렸고 마음은 맞았다
첫 만남 이후, 오빠는 놀라울 정도로 꾸준하게 연락을 했다. 나는 병원에서 일할 때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으니, 도착해 있는 문자며 카톡들은 늘 몇 시간 뒤에야 확인하곤 했다. 나름대로 미안함도 있었지만, 퇴근 후 통화로 하루를 정리하는 것도 어느 순간엔 조금 벅차게 느껴졌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렇게 자꾸 연락을 하는 거지?’
정성스러운 건 알겠는데, 한편으론 조금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때 이미 사랑에 들뜨기엔 너무 현실적이었고, 또 너무 바빴다. 오빠는 나보다 한 살만 많지만, 나는 그를 늘 ‘오빠’라고 불렀다. 그 호칭이 내겐 상대에 대한 예의를 담은 표현이었다. (물론 화가 나는 날엔 오빠도 없고 뭐도 없었지만. 그건 예외다.) 우리는 평일엔 서로의 일에 치여 만날 여유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주말 데이트가 둘만의 작은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 아침, 모든 흐름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더 바쁜 출근 준비의 아침이었다.
머리를 말리다가, 파우치를 열다가, 겨우 양말을 맞춰 신고 있는데— 눈도 덜 뜬 상태에서 톡이 왔다.
“삼십 분 있다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요 “
나는 휴대폰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뭐지? 이 시간에? 지금? 왜?’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좋은 예감보단 불길한 예감이 먼저 오는 성격이라…..
오지 말라고 했지만, 오빠는 “갈게”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평소의 차분한 오빠와는 다른 모습. 그 낯섦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아니, 출근 준비도 바쁜데 왜 오는 건데… 부담스럽게…’ 결국 화가 난 채로 약속 시간보다 훨씬 늦게 내려갔다.
엘베를 내려가는 내 발걸음엔 억울함, 불편함, 그리고 조금의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오빠 차가 조용히 서 있었다.
기대하던 영화 속 장면처럼 문을 활짝 열어주는 세리머니도 없고, 꽃도 안 보이고, 고백 같은 것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어색한 침묵이 흐를 뿐.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수석 문을 열고 탔다.
“아침에 이렇게 오면… 나도 바쁘고, 솔직히 좀 부담스러워.” 음성엔 짜증이 슬쩍 묻어 있었고, 나도 알았다.
그때였다. 아무 말도 없이 라디오 볼륨을 내리고, 갑자기 정면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김범수의 〈사랑의 시작은 고백에서부터〉. 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 아침 주차장에서? 출근 시간에? 나 화나 있는데?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웃음도, 감동도, 화도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오빠가 노래를 너무 못 불렀다.
아니, 정말 너무…. 처음 10초 동안은 “이 노래가 김범수 노래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음이 반 박자 앞서가고, 가사는 뭉개지고, 호흡은 어디다 두고 오는지 모르겠고.
하지만 그 서툼이… 이상하게 마음을 덮어왔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오빠는 조심스럽게 준비해 온 꽃을 꺼냈다. 아침 햇빛도 들지 않는 지하 주차장에서, 서툰 노래와 낯선 떨림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제일 정성스러운 ‘급 프러포즈’. 내 머릿속은 여러 감정이 폭죽처럼 터졌다.
짜증, 당황, 어이없음, 웃음, 설렘… 그리고 묘한 따뜻함. 그 순간, 알았다.
이 사람은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온 사람이라는 걸.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완벽했던 그 아침. 음이 다 흘러내린 그 고백이 지금도 내 사랑 이야기의 첫 장을 가장 반짝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