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침, 그녀를 향해 용기를 꺼내다.
처음 그녀를 만난 날, 나는 이상했다.
딱히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그녀가 돌아선 순간부터 마음이 계속 그곳에 걸려 있었다. 이 나이에 이런 감정이 다시 찾아올 거라 생각도 못 했는데, 그녀는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잔잔한데, 오래 남는 향기 같은 그런 사람. 그래서였다. 내가 먼저 자꾸 연락을 했던 건. 퇴근 후 통화로 하루를 끝내는 게 내게는 너무 좋았다.
그녀는 “바빠서 잘 못 본다”라고 했지만, 그 말조차 귀여워서 자꾸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연락이 너무 잦았던 걸까. 어느 순간 그녀의 말투에서 살짝 부담스러움이 느껴졌다. 그 여린 숨결 같은 미묘한 거리감이, 내겐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놓치면 안 된다. 이 사람만은, 정말.’
그 마음이 들끓다가 결국 나는… 김범수의 노래를 밤마다 연습했다. 내 목소리로 그 높은음이든 낮은음이든 노래를 한다는 건 어떻게 말해도… 참혹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진심을 말했다는 기록 하나라도 남기고 싶었다. 완벽한 목소리는 아니어도, 완벽한 마음은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아침, 나는 너무 무모한 계획을 실행했다. 평소엔 절대 안 그러는 시간. 그녀가 분명 바쁠 시간. 나에게도 일터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그 모든 계산이 다 무너지고 “삼십 분 뒤에 내려와 줘”
그 말 한 줄로 모든 걸 걸었다.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제일 열심히 일했다. 그녀가 오기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아예 안 내려오면? 화내면? 나를 아예 싫어하면?
주차장에 서 있는데, 세상 모든 바람이 내 심장만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표정은… 차갑다 못해 냉동 창고였다. 긴장으로 온몸이 굳은 나는, 갑자기 준비한 말을 다 까먹었다. 그래서 노래를 틀었다. 아니, 틀려는 순간… 손이 떨려서 멈췄다.
결국 그냥 불렀다.
김범수의 〈사랑의 시작은 고백에서부터〉.
첫 소절부터 음이탈이다. 음이 다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겠다. 나조차 ‘이건 아닌데?’ 싶은데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녀만 쳐다보고, 가사 한 글자씩 꼭 붙잡듯이 불렀다. 노래가 끝나갈 때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꽃을 꺼냈다. 손에는 땀이 가득했다.
“은영 씨… 나랑… 잘 만나봐 줄래요?”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그 표정에는 화가 절반, 당황이 40%,
그리고 아주아주 조그만 설렘이 숨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노래를 너무 못 불러서 놀란 거라는 건 그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내 서툰 진심을 받아주었다.
억지로 꾸미지 않은 마음, 어설픈 멜로디, 숨이 차오르는 떨림까지 모두.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사람이 인연을 만난다는 건 멋있게 잘 준비된 퍼포먼스가 아니라 부끄럽고 어설픈 나를 내어놓을 수 있는 용기라는 걸.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더 놓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