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곁‘을 배운 날
1988년 7월 2일 새벽.
아빠가 너무 슬프게 울고 계신다.
나는 그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집 안은 아직 깊은 어둠 속이었고, 울음은 문틈과 벽을 타고 조심스럽게 번져왔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울음이었다. 울음을 삼키는 숨소리, 멈췄다 다시 이어지는 흐느낌. 그래서 더 또렷하게 들렸다. 잠결에도 나는 그 울음이 평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달 전, 할머니는 버스를 타시다 사고를 당하셨다. 운전기사가 할머니를 보지 못한 채 문을 닫았고, 그 바람에 할머니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셨다. 골반뼈와 엉치뼈가 부서졌다는 말을 들었다. 어른들이 낮은 목소리로 나누던 대화 속에서 그 말만 유독 또렷이 귀에 남았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계속 병원에 계셨다. 면회를 갈 때마다 할머니는 누워 계셨고, 나는 괜히 더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혹시라도 할머니가 나를 놓칠까 봐.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안방에 할머니가 누워 계셨다. 병원이 아닌, 집이었다. 집 안에는 고모들과 친척들이 와 있었고, 말은 많지 않은데 사람은 많았다. 설명할 수 없는 긴장과 침묵이 집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아빠는 유난히 작아 보였다. 등을 구부린 채 방 안을 오가던 아빠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날 병원에서는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 시절엔 어르신이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객사’라 여겼다. 그래서 마지막 날은 집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아무 질문도 하지 못했다.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고, 묻는 순간 이 모든 상황이 진짜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그저 집 안의 공기를 눈치 보고 있었다.
고모들은 엄마와 함께 할머니의 몸을 깨끗이 닦아드렸다. 물수건이 오가고, 이불이 정리되고, 방 안은 점점 조용해졌다. 할머니는 끝까지 아프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신음도, 불평도 없었다. 그저 숨을 고르듯, 시간을 건너듯 누워 계셨다. 아빠는 밤새 할머니 곁을 지키셨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나 할머니를 들여다보고, 이불을 한 번 더 여미고. 잠들지 않은 밤이었다.
그리고 그 새벽,
아빠는 울고 계셨다.
할머니는 그렇게 조용히 돌아가셨다. 나는 중학생이었고, 할머니의 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언니들은 무섭다며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딸들 중에서 “할머니를 제일 닮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얼굴 때문인지, 성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 그날따라 내 자리를 정해주는 이유처럼 느껴졌다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되는 사람 같았다.
상여를 하고, 선산에 할머니를 모셔드렸다. 관 위로 흙이 덮이고, 사람들은 하나둘 돌아섰다. 그 순간까지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가 아주 조용히 끝났다는 느낌만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죽음은 늘 큰 소리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울부짖음보다 침묵이 더 많은 순간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의 곁을 끝까지 지킨다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오래 마음에 남는 일이라는 것도.
아빠의 울음소리는 그날 이후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말보다 먼저 남았고,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의 마지막에 곁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유난히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그 새벽 이후로 나는 이상하게도 마지막의 자리를 피해 가지 않게 되었다. 아직은 몰랐지만, 그 선택은 훗날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지를 이미 정해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아주 이른 새벽에 ‘곁’이라는 말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