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지만 깊었던 한 인연에 대하여
지팡이를 짚고, 너무도 왜소한 체격의 할아버지가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다리가 저려 견딜 수 없다며 얼른 주사를 놔 달라고,
들어오자마자 화를 내셨다.
그게 그분과의 첫 만남이었다.
남루한 옷차림에 바지 앞지퍼는 늘 열려 있었지만,
군 시절 위생병 출신이라며 그 이야기를 꺼내실 땐
아이처럼 눈이 반짝이던 분이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귀여웠다.
진단명은 척추관협착과 압박골절.
신경이 눌려 발끝까지 저린 좌골신경통이었다.
몇 번 병원을 오가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어느 날은 아들이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라며 자랑을 하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학교가 우리 아버지가 졸업한 고등학교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순간, 환자가 아니라 인연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더 마음을 써 잘해드리고 싶어졌다.
며칠 뒤에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오셔서
“이 사람 무릎도 좀 고쳐달라”며 대신 부탁을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그 봄엔,
이상하게도 할아버지 덕분에 병원 생활이 즐거웠다.
툭툭 내뱉는 말씀 하나하나가 세월이 묻은 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경주사를 맞은 날엔 혼자 걸어 집에 가시기 힘들어
점심시간을 쪼개 집까지 모셔다 드리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드님이 직접 찾아와
말없이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2주째 병원에 오지 않으셨다.
전화를 드리니 2주 전 화장실에서 넘어져 머리를 크게
다치셨다고 했다.
놀라고 울컥하는 마음을 안고
나는 할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자실에 계셨고 인공호흡기까지 달고 계셨다.
이제 허리 통증은 문제가 아니었고,
그저 의식만 돌아오기를 바랐다.
할머니는 나만 보시면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하셨어요”라며
연신 그동안 감사하다고 울먹이셨다.
그날부터 나는 3주 동안 매일 퇴근 후 중환자실에 들렀다. 말없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얼른 일어나셔서 위생병 시절 이야기 또 해주세요”
라며 혼잣말처럼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허나, 그날의 따뜻함이 마지막이었다.
다음 날 퇴근 무렵, 할아버지에게 가려고 부랴부랴 퇴근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난 울컥해서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할머님깨 비록 짧은 인연이었지만 마음 깊이 남은 분이라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싶다고 했다.
장지는 제천.
다음 날 아침 출근 전, 새벽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설쳤고 평소보다 30분 늦게 눈을 떠 허둥지둥 고속도로에 올랐다.
가는 길에 큰 교통사고가 나 도로엔 피가 선명히 남아 있었다. 불과 30분 전 사고라고 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내가 늦게 일어난 게 다행이었을까.
아니면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내 길을 지켜주신 걸까.
장례식장을 다녀와 다시 출근해 일을 했지만
하루 종일 마음이 비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이렇게 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인연을 끝까지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어쩌면 ‘곁’이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조차
자리를 비우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알았다.
돌봄이 끝나는 순간에도
곁은 남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