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곁에 있었지만, 닿지 못한 죽음

어떤 서류에도 남지 않은 말

by 손샤인

내가 곁을 지키지 못한 죽음도 있다.


오래전, 규모가 꽤 있어 병동까지 갖춘 개인병원에서 일하던 때였다.

어느 날 교통사고로 척추 손상을 입은 한 아저씨가

우리 병원으로 오셨다.

직업은 택시 운전사.

오십 대였고, 스무 살이 넘은 아들이 하나 있었다.


척추 손상으로 다리 저림이 심했지만 수술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어서 한 달간 비수술적 치료를 받으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은 조금씩 호전되었고,

원장님과 충분한 상의 끝에 다음 주 월요일 퇴원 후 통원 치료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날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병동이 소란스러워졌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병원으로 들어와

퇴원할 수 없다며 고함을 질렀다.

보험사와 합의가 안 되었다며

막무가내로 난동을 부렸다.


그는 아버지에게도 욕설을 퍼부었다.

“병신 돼서 장애등급 받아야 하는데 무슨 퇴원이냐”며

아버지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아저씨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선생님,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병실로 돌아가셨다.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상황은 진정되었고,

아들은 병원을 나갔다.


나는 조용히 아저씨 병실로 올라갔다.

침대 끝에 맥없이 앉아 계셨다.


“아들이요…”

아저씨는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도박으로 다 날렸답니다. 퇴원해도… 갈 곳이 없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위로를 건네기에도, 아무 말하지 않기에도

모두 미안했다.

원장님께 더 계실 수 있는지 한번 말씀드려 보겠다고 하자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세요.”


한 달 동안 병원에 계시며 그는 늘 먼저 인사를 건네셨고 다른 환자들과도 잘 지냈다.

퇴원하면 다시 건강해져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등산을 가겠다고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그런데 아들의 난동 이후,

그는 마치 세상에서 패배자가 된 사람처럼

눈빛이 꺼져 있었다.


퇴근 무렵,

담주 월요일에 다시 퇴원 문제를 원장님과 상의해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주말 동안 편히 계시라고 말씀드리고

나는 병원을 나섰다.


다음 날 일요일 아침,

당직자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아저씨가 밤새 병실에 안 들어오셨어요.

그런데 사복이랑 휴대전화는 침대 위에 있어요.”


나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침대 위에는 사복이 단정히 접혀 있었고

휴대전화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상했다.

너무도 이상했다.


가장 먼저 CCTV를 확인했다.


내가 퇴근한 뒤,

아들이 다시 병실로 찾아와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고 나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밤 열 시쯤,

아저씨가 옷걸이와 어떤 끈을 들고

병실을 나가 병원 입구 공동 남자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이후,

그는 나오지 않았다.


당직자는 밤중에 화장실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CCTV 확인 후

나는 화장실 네 칸 중

가장 안쪽 칸으로 향했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쉽게 열 수 있었다.


그 안에

아저씨가 있었다.


천장에 옷걸이와 끈을 이용해

목을 맨 채로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무서웠다.

너무 놀랐고, 손이 떨렸다.

하지만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바로 병원입구 공동 화장실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졌다.

아저씨는 구급차 침대에 실려

흰 천으로 덮인 채 병원을 떠났다.


다음 날 병원에 들이닥친 아들의 얼굴에는

슬픔도, 놀람도 없었다.

밤을 새운 사람 특유의 술 냄새와

지나치게 또렷한 계산이 먼저 느껴졌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사고로도, 상실로도 부르지 않았다.

병원에서 아버지를 죽였다며

합의금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말은

한 번도 감정에 닿지 않았다.


나는 그가 너무 어려서

무너진 것일 거라 생각하려 했다.

겨우 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망가질 수도 있다고,

그렇게 이해해 보려 했다.


하지만 돈을 말하는 방식은

공포나 혼란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건 계산이었고, 요구였고,

죽음을 기회로 바꾸는 문장이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인간으로서의 슬픔이 사라진 자리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않았다.

대신 값으로 환산했다.

그건 불효를 넘어

부모의 죽음을 거래로 삼는 패륜에 가까웠다.


나는 간호사였지만

그날만큼은 사람으로서 서 있었다.

사망 확인보다 먼저,

인간성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건은 자살로 마무리되었고

병원은 아저씨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퇴원해도 갈 곳이 없다는 말은

어떤 서류에도 남지 않았다.


그 말만이

간호사였던 나의 기억 속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그날 결에 있었지만,

끝내 닿지 못한 죽음이 있다.


나는 아직도 그 말 앞에서

간호사로 서 있다.


그것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나를 떠나지 않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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