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치매는 기억을 데려가도

초코파이를 건네던 날

by 손샤인

나는 오랫동안

늙어가는 몸과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 곁에 있었다.


그래서 안다.

치매가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또 무엇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지를.


내가 참 좋아했던 한 아버님이 계셨다.

종교적으로 신실하셨고

삶의 태도 또한 단정한 분이었다.


아버님은 고령이었고

치매가 깊어지며 결국 요양원에 계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일하던 병원의 원장님 아버님이셨다.

아프시기 전부터 알고 지낸 분이라

내 기억 속의 아버님은 늘

젊잖고, 건강하고, 눈빛이 맑은 분이었다.


어느 날,

아버님이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시더니

조용히 물으셨다.


“이 안에 있는 늙은이는 누구지?”


간호사로서

수없이 들어온 질문이었지만

그날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래도 나는 웃으며 말했다.


“누구긴요, 아버님이시죠.

여전히 멋지세요.”


치매는

자기 얼굴조차 낯설게 만들지만

타인의 말 한마디에는

아직 반응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아버님은 요양원에서 생활하셨다.

내가 찾아갈 때마다

“누구세요?” 하고 물으셨다가도

잠시 뒤엔 늘 같은 말을 하셨다.


“이쁜 아가씨가 왔네. 고마워요.”


기억은 사라져도

예의는 남아 있었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아버님은 신발을 신고 주무시고,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버님은

큰 교회의 장로님이셨고

88년의 삶 중

60년을 믿음 안에서 살아오신 분이었다.


하루 일과는 늘 같았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셨다.

영어 성경을 읽으실 만큼 총명하셨고

그 반복은

치매 환자의 ‘의미 없는 루틴’이 아니라

한 사람의 평생이 쌓아온 리듬처럼 보였다.


원장님은 아들이었지만

부자 관계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버님에게서

자꾸만 우리 아빠를 보았다.


그래서

간호사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일주일에 한 번

요양원을 찾았다.


특별한 간호는 없었다.

그저 곁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휠체어를 밀어 병실을 한 바퀴 돌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치매 환자에게

‘곁’이 얼마나 큰 돌봄인지.


어느 날,

아버님은 음식을 급하게 드신 뒤 체하셨고

곧 폐렴으로 많이 편찮아지셨다.


이상하게도

아플수록

아버님의 표정은 더 편안해 보였다.


임종이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을

나는 여러 번 보아왔다.

그 평온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준비될 때 나타난다는 것도.


그날 집에 가려 하자

아버님은 내 손을 붙잡으셨다.


“서랍 안에 초코파이 있어.

그거 먹고 가.”


순간,

치매 이전의 아버님이 돌아온 듯했다.


나는 초코파이를 먹으며

다음 주엔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딸기를 사 오겠다고 말했다.


요양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사흘 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아버지도 아닌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

그날은 일을 할 수 없었다.


간호사인 나는

많은 죽음을 보아왔지만

모든 이별에

익숙해질 수는 없다.


나는

나와 인연을 맺는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

핏줄이 아니어도,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아도

곁에 있었던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착한 치매, 나쁜 치매를 나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치매는

사람을 지워버리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그 사람을 끝까지 보려는 노력을 요구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아버님의 곁에 있었던

간호사였다.


치매는 기억을 데려가도,

곁에 있었던 마음까지 데려가지는 못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