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준 하루
오늘 아침, 내시경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침 일찍 내시경실에 들어갈 일이 있었다.
외래에서 한 번 뵌 적이 있는 환자분이 계셨다.
내가 좋아하는, 아빠 또래의 아버님이었다.
개인병원에서 암 의심 소견을 듣고
정밀 검사를 위해 본원으로 오신 분이었다.
문제는 하나였다.
수면 대장내시경을 하려면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아버님은 혼자 오셨다.
내시경실 간호사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보호자가 없으면 수면 내시경은 어렵습니다.
일반으로 하셔야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 아버님 얼굴이 굳었다.
잠시 후 아버님이 말했다.
“마누라는 죽었고 하나 있는 아들은 연락도 안 되는데
내가 보호자를 어디서 데려와요?”
개인병원에서는 그냥 했는데
왜 여기서는 보호자를 데려오라고 하느냐며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냐”라고 서운함 섞인 화를 내셨다.
사실 수면 진정제를 쓰면 검사가 끝난 뒤에도 어지러움이 남는다. 그래서 혼자 이동하다가 넘어질 수 있는 낙상 위험이 있다. 그래서 보호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아버님께 말했다.
“아버님, 화내지 마세요. 제가 보호자 할게요.”
그리고 아버님을 모시고 내시경실로 들어갔다
대장내시경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곁에서 조직 채취를 도왔다.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크기도 크고 모양도
암이 의심되는 모습이었다.
검사가 끝난 뒤 아버님을 모시고 나와 엑스레이와 CT 검사까지 함께 동행했다.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그때 아버님이 나를 보며 물었다.
“선생님은… 천사 세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날개 안 보이세요?”
그리고 장난처럼 덧붙였다.
“오늘 아버님한테 천사 하기로 했어요.”
아버님은 잠시 나를 바라보시더니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울컥했다.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내가 병원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는 걸 알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내가 아직도 이렇게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면 말이다.
사실 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조금 오지랖 같아서 택시를 잡아드렸다.
아버님이 차에 올라타기 전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손을 흔들어 드렸다.
택시는 천천히 병원 앞을 떠났다.
내 오전과 점심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다시 병원 복도를 걸었다.
창가로 햇살이 길게 들어와
복도 바닥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병원에서는 많은 장면들이 지나간다.
아픈 사람,
걱정하는 사람,
그리고
그 곁에 잠시 서 있는 사람들.
어쩌면 간호사라는 일은 누군가의 삶 한 장면 옆에
잠깐 서 있어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한 아버님의 곁에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버님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천사 세요?”
어쩌면 천사는 날개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곁에 잠깐 서 있어 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그 역할을
잠깐 맡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