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의 시간에 대하여
아빤 중환자실에서 몇 달을 계셨고 나는 단 5분을 볼 수만 있어도 퇴근 후 매일 수원과 원주를 오가며
내 무책임함을 속죄하고 싶었다.
결국 아빤 언어장애와 반신불수로 왼쪽 팔다리에 마비가 왔고, 의식은 있으셨지만 말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는 자괴감에 우울증까지 겪으며
하루하루 고통스러워하셨다.
나는 아빠를 이렇게 만든 게 나인 것만 같았다.
형제들에게도 할 말이 없었고 엄마에게는 더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너 때문에 어제 막국수도 그렇게 잘 드셨는데.
걱정하지 마. 아빠 금방 일어나셔.”
엄마는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다독여 주셨다.
그날 아빠와 함께 먹었던 막국수가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아빤 원주 기독병원에서 1년 동안 중환자실에 계셨고,
이후 교외 근처 요양재활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으셨다. 병원 주변은 온통 논이었다.
엄마는 가을이면 메뚜기를 잡았다.
“아빠 퇴원하시면 술안주로 볶아드릴 거야.”
그 말을 하며 아이처럼 신나 하셨다.
당신 몸은 아랑곳하지 않으시다가 논에서 넘어져
엉치뼈가 골절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집에 갔더니
엄마가 아빠 와이셔츠를 다리고 계셨다.
“왜 다려요?”
“퇴원하시면 입으셔야지.”
속옷과 양말까지 차곡차곡 정리해 서랍장에 넣어두고
마치 내일 당장 아빠가 그걸 입고 출근하실 것처럼
집을 만들어 두셨다.
엄마는 그 안에서 웃고 계셨다.
그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지금도 바로 눈물이 난다.
엄마에게 아빠의 병은 시간이 지나면
곧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병이었다.
그 믿음이 엄마를 버티게 했고, 그게
엄마의 치매를 예고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아빠의 병이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아빠의 아픔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엄마는 아빠 병원까지 두 시간 거리의 길을 매일 걸어서 다니셨다.
저녁에도 혼자 걸어서 돌아오셨다.
아무도 엄마가 그렇게 다니고 계셨다는 걸 몰랐다.
아빠 없는 텅 빈 집에서 아빠의 물건과
아빠와의 기억으로 버티고 계셨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렇게 방을 쓸고 닦고 깨끗하던 집은
점점 지저분해졌고, 엄마의 애완견 냄새로
창문을 열지 않으면 숨 쉬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명랑하고 밝았던 엄마는 조금씩 변해갔다.
그제야 언니와 동생, 그리고 내가 번갈아 가며
엄마 곁을 지키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아빠가 쓰러지시기 전부터
엄마는 이미 경도의 건망증이 있었고 치매약을 드시고 계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쓰러지신 뒤
엄마의 약은 끊겼다. 누구도 챙겨드리지 못했고
엄마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에게 숨기고
더 이상 약을 드시지 않았다.
그 사이 엄마의 치매는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마저 내 탓 같았다.
2015년 5월 8일, 어버이날.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 무렵 동생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빠.. 숨을 안 쉬셔서 응급실로 왔어!"
운전을 하며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원주 기독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이미
영안실로 옮겨져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아빠....
오늘 어버이날인데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정신이 혼미해져 방향감각도 잃은 채 길을 헤매다가
지나가던 학생에게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죄송한데 영안실 좀 알려줄 수 있나요"
라고 부탁해 겨우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모든 것이 연극 같고 꿈같고 현실이 아닌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상복으로 갈아입고 나는 향을 피운 뒤 아빠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이미자의 노래를 틀었다.
누군가는 장례식장에서 음악을 트냐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아빠가 좋아하셨던 노래를 가는 길 내내 들려드리고 싶었다.
언니들과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울고, 울고, 또 울며 삼일을 보냈다. 아빠를 화장해 횡성 선산 납골묘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상복을 입은 채로 엄마와 함께 노래방에 갔다. 4년 동안 병마와 싸우며 고통 속에 계셨던 아빠가 이제는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아빠가 좋아하시던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빠를 기억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빠를 보내고 나는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우울감과 상실감이 나를 집어삼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조차 버거웠다.
아빠가 없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나를 더 크게 무너뜨렸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곁에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기적 같은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기적은 아주 아무렇지 않게
끝나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안다.
곁은,
있을 때만 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