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마지막 막국수
이 이야기는 정작 지켜야 할 내 부모님의 곁을
지키지 못했던 못난 딸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곁’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자니? 집에 언제 올 수 있니?
아빠가 자꾸 눈물이 난다.”
2011년 8월 어느 토요일 새벽,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이시며 나에게 전화를 거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일요일 아침에 원주에 내려갈 생각이었다.
“내일 갈게요.”
전화를 끊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울먹이던 아빠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원주 집으로 내려갔다.
소파에 앉아 계신 아빠의 눈빛은
어딘가 초점이 없었다.
예전의 아빠가 아닌 것 같았다.
아빠는 눈물을 흘리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나를 바라보셨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울컥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내 뒤를 따라오며
아빠가 며칠 전부터 식사도 못 하시고
걸음도 잘 못 걷는 것 같다며
큰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하셨다.
하지만 그날 난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다음 날이 내 생일이어서 내 아이들과 오랜만에
주말을 함께 보내기로 했던 것이다.
주말에 응급실을 가도 인턴들만 있고 제대로 진료받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내일 아침 일찍 병원 가요.”
그리고 아빠가 좋아하시던
막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엄마와 아이들, 그리고 아빠와 함께
걸어서 식당까지 갔다.
하지만 아빠는 젓가락을 잡지도 못하셨다.
나는 국수를 수저로 드실 수 있게 잘게 잘라 드렸다.
“괜찮아요 아빠.”
불안해하시는 엄마도 나는 계속 안심시켰다.
식사를 마치자
아빠는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하셨다.
괜히 걱정시켜 미안하다며
손주들에게 용돈까지 주셨다.
“재밌게 놀아라.”
우리는 아빠와 엄마를 집에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빠의 병이
막국수 한 그릇으로 나아질 병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 날
아빠에게서 아침 일찍 오던 생일 전화가 오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병원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은영아…
아빠가 침대에서 못 일어나…”
나는 가방만 챙겨 들고 원주로 달려갔다.
가는 내내 같은 생각이 반복됐다.
내 탓이야.
내가 놓친 거야.
원주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기독병원 응급실에 계셨다.
곧 뇌수술에 들어간다고 했다.
뇌출혈이었다.
나는 신경외과 간호사였다.
전조증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아빠의 골든타임을 내가 놓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수술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리고
아빠의 긴 투병이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