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 작은언니가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나는 그게 너무도 부러웠다.
학교에 안 가고 집에 있는 것,
왠지 모르게 특별한 대우 같았고,
그건 나에겐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그날 밤,
식구들이 다 잠든 조용한 시간,
나는 몰래 화장실로 들어가
언니의 칫솔을 집어 들었다.
‘이걸로 이를 닦으면 언니 병이 나한테 옮겠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그땐 진심이었다.
언니 대신 아프고 싶었고, 무엇보다 학교에 안 가고 싶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다음 날 나는 고열로 쓰러졌고, 학교는 가지 않았지만
놀지도 못했다.
그렇게 열나고 앓아누운 내게 엄마는 말하셨다.
“언니가 걸린 장티푸스가 너한테 까지 전염되고 어쩌냐.. 큰일이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얼굴에서 피가 싹 가셨다.
장티푸스?
그게 뭔진 몰라도
‘큰일’이라는 건 알 것 같았다.
어차피 칫솔로 양치를 안 했어도 나는 아팠을 것이다.
이미 병은 내 안에 들어왔던 거다.
하지만 어릴 적 나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노는 것’을
갈망했던 거다.
그땐 놀이터도 없었고,
심지어 우리는 뒷산 무덤가에서 놀았다.
풀잎을 뽑고,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하며. 비료포대를 깔고 미끄럼을 타며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지금 돌아보면 참 순수하고도 치열했던 유년기였다.
아프기까지 해서 얻고 싶었던 하루의 여유.
그 하루를 뺏기지 않으려
언니의 칫솔을 움켜쥐었던 나.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삶을 ‘체험’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