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4학년, 스승의 날(아빠생신)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아빠 회사 직원 한 분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 시절엔 포도, 바나나, 망고 같은 과일이 귀했기에
우리는 열광하며 바구니를 둘러쌌고, 신나게 하나씩 꺼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맨 아래에서 하얀 봉투 하나가 나왔습니다.
“이건 아빠 드려야지~”
엄마는 이미 신이 나 있었고, 저는 그저 들떠 있었습니다.
그때, 아빠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습니다.
“은영아, 어서 가서 그거 돌려드려라.
아빤, 그런 사람 아니다.”
순간 엄마 얼굴에 스치는 서운함.
그 분위기를 읽고는, 저는 정말 두 칸, 세 칸을 뛰어내려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계단을 헐떡이며 내려갔습니다.
“아저씨! 이거요!
우리 아빠는 뇌물 안 받아요!
다신 우리 집 오지 마세요!”
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습니다.
“…근데, 과일은 잘 먹을게요!”
돌이켜보면, 그날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하나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아빠는 그 어떤 훈계도 하지 않으셨지만,
몸소 ‘청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날의 그 선택은, 말보다 훨씬 단호하고 위대한 교육이었습니다.
오늘은 아빠 생신입니다.
그 시절, 그 아빠.
나는 지금도 그 아빠가 자랑스럽습니다.
아빠는 뇌물 대신 신뢰를 받으셨고,
그 신뢰는 딸의 기억 속에 평생 남았습니다.
하늘에서도 엄마랑 사이좋게 지내고 계시겠죠.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딸 은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