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늙은 공주, 귤 먹을래?

by 손샤인

“우리 늙은 공주, 귤 먹을래?”

“아니!!”

“귤 먹을래”라는 말이 열 번째 흘러나온다.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엄마는 ‘착한 치매’에 걸리셨다.

같은 톤, 같은 말, 같은 표정.

엄마의 하루는 무한 반복이었다.

그리고 늘, 무언가를 먹이려 하셨다.

마치 내가 굶고 있는 걸 아시는 것처럼.

한 번은 마음을 바꿔봤다.

“응, 귤 줘.”

귤을 받아먹으며 ‘이제 멈추시겠지’ 싶었다.

잠깐의 정적 뒤, 엄마는 물으셨다.

“사과 먹을래?”

엄마는 늘 뭔가를 먹게 하셨다.

전화 통화도 “밥 먹었어?”로 시작해서

“밥 먹었어?”로 끝났다.

마른 내 몸을 볼 때마다,

“너는 왜 그렇게 안 먹니. 다 엄마 탓이야.”

하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마흔이 넘은 내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날,

엄마 아빠 두 분이 동시에 만세를 외치셨다.

그 쉬운 효도, 왜 더 자주 해드리지 못했을까.

그렇게 간단한 행복이 있었는데.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으셨을 때,

우리는 모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가장 속상해한 건, 엄마 자신이었다.

엄마의 유일한 취미는 고스톱.

동네 아주머니들과 삼삼오오 모여 십 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깔깔 웃으시던 분.

내가 “또 고스톱이야?”라며 핀잔을 주면,

“치매 예방 운동하고 왔어.”

하시며 미안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런 엄마가 치매에 걸리셨다.

엄마의 작은 즐거움을 핀잔하지 말 걸.

“엄마, 오늘은 몇 판 이겼어?”

“잘 치고 왔어?”

그렇게 응원해드렸어야 했다.

나는 나빴다. 정말 나빴다.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으셨을 때,

나는 경찰서에 가서 지문 등록을 하고,

휴대폰 번호가 적힌 팔찌를 만들어드렸다.

나름 신경 썼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깊이 우울해하셨다.

아빠가 쓰러지신 뒤에도, 엄마는 늘 믿고 계셨다.

“시간이 지나면 퇴원해서 집으로 오실 거야.”

어느 날, 엄마 집에 들렀다가 안방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엄마가 아빠 와이셔츠를 다리고 계셨다.

“엄마, 뭐 해?”

“아빠 퇴원하실 때 입으실 와이셔츠 다리지~

원래 퇴원할 때 옷을 단정히 입어야 해.

그래야 다시는 병원에 안 가지.

너네 아빠는 공무원이라서 하얀 와이셔츠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몰라. 그렇지?”

“엄마… 아빠 언제 퇴원하는데?”

“금방.”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밝은 얼굴 앞에서

‘아빠는 집에 못 와요’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결국 화장실에 숨어 울었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엄마는 말하셨다.

“곧 퇴원하신다.”

믿고 싶지 않은 걸까, 믿을 수 없었던 걸까.

엄마는 아빠의 다음을 꿈꾸고 계셨다.

아빠가 병상에 누워 계신 몇 년 동안,

엄마는 ‘퇴원 후’를 준비하셨다.

어느 날은, 빈 페트병에 메뚜기를 한가득 잡아오셨다.

“아빠 퇴원하면 볶아줄 거야. 얼마나 좋아하는데!”

웃으며 말씀하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도무지 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며칠 후, 엄마는 허리 통증으로 걷지 못하셨다.

병원에 모시고 가니 척추 압박 골절.

메뚜기 한 마리 더 잡으려고 논밭을 뛰다

넘어진 거였다.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아빠가 좋아할까?’

그 생각이 먼저였던 사람.

아픈 아빠 곁에서,

엄마의 병도 함께 깊어져 갔다.

엄마의 치매는 망각이 아니라 끝내 놓지 못한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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