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라는 이름 아래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목표를 잃은 뒤 찾아온 깊은 공허,
내가 나를 자책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던 시간이었다.
삶이 버거웠고, 병원이라는 공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내가 나를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환자 덕분이었다.
그들의 고통에 온전히 집중할 때만이
내 아픔을 잠시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왔다.
생후 9개월.
아직 말을 못 하는 아기였고, 병명은 합지증.
두 손의 손가락이 전부 붙어 태어난 선천적 기형이었다.
이런 경우, 수술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장할수록 피부가 위축되어 흉터가 심해질 수 있고,
피부이식까지 필요한 경우도 많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봤다.
작고 여린 손에 묻어난 굳은 생의 흔적.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는,
병실 한 구석에 조용히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눈빛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반면 함께 온 시어머니는 얼굴에 억울함을 가득 안고
병실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태교를 얼마나 못했으면 이래요!
내 아들은 아무 잘못 없어요, 피해자라고요!”
그 말이 병실 가득 울려 퍼질 때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여자가 여자를 향해 할 수 없는 말들이
그 어머니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같은 여자인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누군가를 향한 연민보다 먼저 앞서 나오는 저런 비난의 말들을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뱉을 수 있을까?
그 순간,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내가 여섯 살 무렵 ,
강원도 인제에서 살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마당에서 놀고 있을 때 거지 아주머니가 우리 집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동냥을 하러 오신 그분을 엄마는 선뜻 안으로 들이셨다.
심지아 집 마루로 올라오게 하시고, 밥상까지 차려주셨다.
나는 놀랐다.
냄새나고, 초라하고, 낯선 사람.
그분이 밥을 먹는 모습을 마루 한구석에 앉아 숨죽여 지켜보던 나는 순간 소리를 질렀다.
“엄마, 저 거지 괴물이야!!”
그분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두 개 있었다.
내가 처음 마주한 손가락 6개인 아줌마
내 소리에 엄마는 나를 단호히 나무라셨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방에 들어가 있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 왜 저러지?
하지만 동시에 엄마가 참 대단해 보였다.
그분이 떠날 때,
엄마는 귀하디 귀한 삼양라면 다섯 개를 싸주셨고
그 아주머니는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며 나가셨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서야 알겠다.
그분은 괴물이 아니었다.
육손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고,
냄새난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며
고단한 인생을 살아온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 태어난 건, 그분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손가락과 발가락부터 센다.
정상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나도 두 아이를 임신했을 때
수많은 미신을 들으며 조심조심 살았다.
“다슬기 먹으면 발톱이 뒤집어진다.”
“오리고기 먹으면 손가락이 다 붙어 나온다.”
미신이라 생각하면서도
혹시, 정말 혹시라도…
불안감에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
가장 먼저 한 일은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차례차례 세어보는 일이었다.
“하나, 둘, 셋…”
10개씩, 정확히.
그 숫자가 얼마나 다행인지,
그 숫자 안에 얼마나 많은 기도가 담겨 있었는지
이제야 더 선명하게 느낀다.
합지증 아기 역시
첫 수술은 무사히 잘 받았고
몇 년 후, 내가 아산병원에서 일할 때
두 번째 수술차 병원에 다시 왔다.
하지만 그때 처음 봤던 아기 엄마는 없었다.
병실 환자들의 말로는 시어머니의 등쌀에 집을 나갔다고 했다.
아기를 안은 시어머니,
“엄마!” 하며 그 품을 찾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짠했지만 그보다도 더 기억에 남은 건
엄마의 자리를 잃은 그 여자의 선택이었다.
모진 말, 끝없는 자책과 비난, 지속된 정신적 폭력 속에서 그녀는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을 해본다.
그 시어머니는 황혼육아라는 이름의 벌을 받고 있다.
말로 찌른 상처는 말로 치유되지 않는다는 걸
어쩌면 이제야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