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업병이 있다.

by 손샤인

나는 직업병이 있다.

학창 시절만 해도 누구보다 느릿느릿했다. 시험을 봐도 마지막까지 끙끙대며 풀고, 준비물도 늘 천천히 챙기던 아이였다. 그런데 간호사가 된 순간부터 내 시간의 속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외과 병동에서의 하루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언제 어떤 환자에게 응급 상황이 닥칠지 알 수 없으니, 늘 시·분·초를 다투듯 움직여야 했다. 식사 시간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밥을 먹는 건 사치였다. 환자가 부르면 뛰어가야 하니, 밥 세 숟가락 뜨고 일어나거나 음식을 씹지도 못한 채 삼키는 날이 허다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벌써 30년을 훌쩍 넘었다.


병원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문제는 그 습관이 집까지 따라온 것이다. 일상에서도 ‘빠르게, 즉시, 긴급히’가 몸에 배어버렸다. 남편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저게 사람 사는 여유지” 하고 매력으로 느껴졌는데, 지금은 속이 터져 혼자 숨 넘어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면서. 그래도 어느 순간은 폭발하고 만다. 그래서 요즘은 다짐한다. 이제는 셋이 아니라 열까지 세어보자고.


어쩌면 남편의 느린 속도는,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치유’ 일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쫓기듯 살아온 세월 끝에서, 조금은 늦어도 괜찮다는 걸 배우라는 뜻일지도. 나는 아직 서툴지만, 언젠가는 밥을 꼭꼭 씹어 삼키며, 느리게 흘러가는 하루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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