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 자매, 셔플로 친정을 다시 짓다

[100-013]

by 손샤인

나를 만든 결정적 장면은, 갈비뼈 두 개를 부여잡고 언니들과 처음 줌으로 셔플 수업을 들었던 그 밤이다. 서핑을 타다 갈비뼈 골절로 몸은 꼼짝 못 했고, 나는 그저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며 언니들의 발끝을 눈으로 따라갈 뿐이었다. “난 아마 평생 몸치겠지” 하는 자조와 “그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작은 용기가 마음속에서 부딪혔다. 그렇게 몇 주를 눈으로만 춤추다, 통증이 가라앉고 처음으로 조심스레 바닥을 딛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초급, 중급, 고급, 전문가반을 지나 강사 1·2급 자격증까지, 언니들과 땀을 섞으며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부모님이 떠나시고 세상에 우리만 덩그러니 남겨진 듯할 때, 셔플은 우리 자매에게 또 다른 ‘친정집’을 만들어 주었다. 명절이면 갈 곳이 없던 우리가, 이제는 산소에 가서 재롱잔치하듯 춤을 춘다. “엄마, 아빠, 우리 이렇게 잘 지내요.” 박자를 맞춰 발을 구를 때마다 마음 한 편의 텅 빈 방이 조금씩 채워지는 느낌이다. 몸치라 놀리던 우리 자매는 이제 각자 직장에서 일하다 퇴근하면 셔플을 연습하고, 또 누군가에게 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다음 달이면 홈플러스 문화센터에서 첫 수업을 연다. 병원 일을 마치고 나면 분명 피곤하겠지만, 이 나이에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제2의 인생을 연다니,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만약 그날, 아픈 몸으로도 줌 화면 앞에 앉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셔플은 나에게 건강을 덤으로 안겨준 운동이자, 흩어질 줄 알았던 자매애를 다시 단단히 묶어준 기적 같은 장면이다.

#책과 강연 #책강대학 # 백일백장 2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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