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석, 보석, 화석

내 취향은 화석

by 손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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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이후로 우리 반 학생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다려지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잘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몹시 어여뻤다.


맞다. 학교의 학생들은 모두들 저마다 다른 빛으로 빛났다. 그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거나, 이미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이거나, 자기만의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묵직한 화석이었다.


모두 다 너무 소중하지만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부류를 꼽는다면, 단연코 내 취향은 '화석'같은 학생들이었다.


"아무래도 잘될 것 같아요."


속 깊은 긍정퀸, 우리 반 서기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리 반 출석부를 정리하면서 겸사겸사 교탁을 정리한다던가, 칠판 곁을 지나가다 유색분필이 부족한 걸 확인하곤 그걸 채워 넣는 식의 세심한 배려를 보였다. 학교의 각종 행사나 봉사활동에도 제일 먼저 나섰다. 어려운 프로젝트 연구 과제를 하며 몇 번이고 실패에 수정을 거듭하는 그녀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자 괜찮다는 말 대신 긍정의 말이 돌아왔다.


"이렇게 또 배우는 거죠!"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쾌활할 수 있지. 그녀는 깨끗하고 맑고 밝은 여고생의 이데아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그늘이 있단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선생님, 저희 할아버지께서 아프셔서 오후자습이랑 야간자율학습을 당분간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저 당분간 미술학원도 못 가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눈망울로 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누가 우리 긍정퀸을 슬프게 한 건가.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신 것과 오자, 야자가 무슨 상관이지..? 나는 그녀와 학기 초에 상담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녀는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났다. 베트남에서 오신 어머니, 한국인 아버지, 친할아버지 그리고 어린 두 동생이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사정이 있으셔서 공장에서 일하시며 공장 기숙사에서 기거하시고, 아버지는 운송업에 종사해서 주말에나 한 번씩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부모님이 모두 바쁘셔서 평소엔 할아버지가 자신들을 돌봐주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제일 소중한 친구이자, 곧 아빠며 엄마라고 털어놓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아직 어린 열일곱이, 배려가 몸에 익고 일찍 철이 든 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빠며 엄마이신 분이 찮으시다니.. 나는 딱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서기는 내가 건네준 휴지를 꼭 쥐고 말을 이었다.


"선생님, 런데 저 미술도 그만둬야 할지도 몰라요.. 근데 상관없어요, 할아버지가 다시 건강해지실 수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이윽고 엉엉 울어버리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며 나는 복잡한 마음에 휩싸였다. 개학 첫날, 교실 뒤편 게시판의 환경미화를 위해 남아서 게시판을 꾸며줄 학생을 필요로 한다고 했을 때 자신이 미술 전공 희망자라며 제일 먼저 손을 들었던 서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알아서 척척 다른 서너 명의 친구들과 팀을 이뤄 다음날까지 우리 반 교실의 환경을 '업사이클링'을 테마로 아주 예술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녀가 미술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그 진심과 자부심이 내게도 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아픈 상황이었다니..

나는 교무실 한편에서 숨죽여 우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이 아려왔다. 교사가 되어 돌아온 학교는 이렇듯 20년 전의 나보다 훨씬 아픈 아이들이 많았다. 동안 나는, 바늘에 찔린 내 상처가 제일 크다고 믿고 세상을 원망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칼에 찔리고도 타인을 위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반성과 함께 담임으로서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일단 알겠고, 미술 그만두는 건 생각해 보자. 선생님도 뭐든 어떻게든 해볼게. "


뭐든, 어떻게든 해보겠다.

그것은 순수한 나의 진심이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 이야기해"


나는 20년 전에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이제는 직접 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불안해졌다. 나는 진심인데, 진짜로 그럴 의지인데, 행여나 20년 전의 내가 그랬듯- 상대는 나의 진심을 그저 흘러가는 말이나 인사치레로 생각하면 어쩌지. 나는 교무실을 나서는 그녀의 등 뒤에 황급히 덧붙였다.


" 찾아와! 작은 거라도 뭐든 같이 고민해 보자. 최선을 다해 도울게!"


교실로 멀어지는 서기의 뒷모습이 유독 자그마해 보였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서기는 전의 밝고 명랑하던 모습을 조금씩 잃어갔고 부쩍 말 수가 줄어들었다. 다시 돌아온 정기 상담에서 그녀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얼마 전에 미 그만뒀어요.."


왜? 언제?

나는 튀어나올 것 같은 질문을 삼키고 답했다.


"들지.."


서기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기 초에 우리 학교는 급식이 맛있어서 좋다며 밝게 웃던 모습은 먼 과거 같았다. 그녀는 불안한 듯 손톱을 뜯으며 말을 이었다.


"돈이 많이 들고, 집중도 못하겠고, 그렇지만 사실 관두고 싶진 않았어요... 정말루요..."


나는 말끝을 흐리는 서기의 손 끝에서 시선을 거뒀다. 대신 책상 한편에서 파일을 꺼내 들었다. 공립 위탁형 예술학교 안내문이었다. 안내 공문이 왔을 때부터 서기를 위해 따로 한 부 더 준비해 둔 것이었다.


"선생님이 조금 알아봤는데.."


내가 관련 서류를 펼쳐 보이자 서기의 동그란 두 눈이 더욱 커졌다. 이엔 고등학교 2·3학년 중 예술분야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위탁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맞춤형 진로 지도를 통해 학생들이 사교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예술적 꿈과 끼를 마음껏 펼쳐 전문예술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한다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때? 2학년 때 여기에 가면 좀 더 맘 편히 미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 서기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가로저었다.


"여기 면접 본대요.. 저 면접 자신 없어요.. "


서기는 이미 마음을 닫은 듯했다. 는 손에 쥐고 있던 형광펜으로 안내문의 신청일자를 밝은 노란색으로 그으며 말했다.


"너 다운 모습을 잃지 말고, 가서 당당하게 하고 오면 돼. 관심 있다면 도전해 봐. 어떤 기회가 될지 모르잖아. 너는 면접, 나는 서류, 열심히 같이 준비해 보자."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기 초만큼은 아니지만 기대의 눈빛에 오늘 막 상담하러 들어왔을 때 보단 훨씬 밝아보였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몇 주 뒤 이른 아침, 교무실로 뛰어 들어온 그녀는 날아갈 듯 기뻐하며 내게 다가왔다. 사실 나 역시 어제 해당 학교 홈페이지를 확인해서 서기가 합격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로 금시초문 인척하며 축하의 말을 보탰다. 그녀는 기쁨에 신 웃음을 멈추지 못하다가 돌연 심각해졌다.


"선생님.. 근데 이제 2학년부터는 그 학교로 등교해야 한대요. 선생님 못 보는 건 슬퍼요. 좋은데 슬퍼요. 우리 수학여행도 같이 못 간대요 그건 정말 슬퍼요.. "


슬플 것 까지야.. '만나면 다 헤어지는 거지 뭐' 하며 웃어넘겼지만 속으로 아쉽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는 그녀를 많이 응원하고 있었다. 더 성장하는 걸 지켜보고 싶었다. 이제는 멀리서 지켜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선생님 종종 찾아올게요. 뵈러 올게요. 친구들 한테도 놀러 올게요."


아직 2학년이 되려면 한참을 멀었는데 벌써 이별인사를 하는 거냐는 내 핀잔에 그녀가 해바라기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자주자주 인사하러 올 거예요!"


그래 언제든지,

나는 문득 언제든지 찾아오라던 20년 전의 어떤 담임교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다른 친구들을 통해 뒤에서 나를 도왔던 그녀의 배려에 새삼 감사함 들었다.



이젠, 받았던 고마움을 베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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