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 너는 왜

처방은 셀프

by 손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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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 성적표 상에 전 과목 내신 1등급, 대부분의 학생이 고배를 마시는 3월과 6월의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 모두 올 1등급을 휩쓴 우리 학교 대한 전교 1등(이하 전일이라 지칭하겠음)이 내게 보낸 SOS메시지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찬란한 보석 같은 그녀가 다 그만두고 싶어 한다니?! 나는 그녀의 카톡메시지를 멍하니 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답장했다. 있다가 수업 마치고 잠깐 찾아오렴. 그러나 그녀는 과외가 있다며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과 다다음날은 생리인정결석과 질병결석을 연속으로 쓰고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애가 탔다.


"네 학부모님.. 네.. 네.."


나는 오늘도 등교하지 않는 전일을 애타게 기다리다 그의 어머님과 겨우 통화가 닿았다. 어머님은 자신이 일을 하느라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자책하시곤, 한 편으론 중학교 때부터 원래 종종 이랬었다며 '그 시기'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원래 그런 아이니까 흔들려도 조금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는 원래 그런 것이 무엇인지, '그 시기'가 어떤 것인지, 이게 흔들리는 것인지 발버둥 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통화를 끊었다.


다음날, 다시 돌아온 전일은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선생님 저 교실에 못 있겠어요."


왜 너도 자퇴하고 싶니.. 나는 교무실로 찾아온 전일을 달래며 상담을 위해 텅 빈 운동장 벤치로 향했다. 그녀는 불안한 듯 어깨를 떨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학교에 있으니까 숨이 안 쉬어져요.."


무슨 말인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학가 주는 무언의 압박감, 경쟁구도, 섬세하기 그지없고 예민한 인간관계, 그 모든 것들이 스트레스 작용했으리라.


"선생님이 어떻게 도와줬으면 좋겠어?"

"그냥 모른척해주시면 좋겠어요."


언제는 알아달라고 SOS를 보내곤 이제와선 모른 척해달라니. 나는 다소 황당했지만,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음은 형태가 없고 늘 변한다.


"죄송해요. 저도 제 마음을 모르겠어요. 근데 괴로워요. 혼자 있고 싶어요.."


전일은 교복 치마 끝자락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 모습을 한 참을 바라보다 생각했던 것을 질문했다.


"어디에 가면 혼자 있을 수 있는데?"

"..."

"앞으로도, 어른이 되어서도 쭈욱 혼자 있을 거야?"


나의 연이은 질문에 전일은 흔들리는 눈망울로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도 혼자 있고 싶다.."


의외의 내 반응에 전일은 고개를 들어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왜, 선생은 혼자 있고 싶어 하면 안 되나. 희 스물두 명이 한 마디씩만 해도 스물 두마디고 난 그걸 늘 담아두고 산다고. 아마도 일주일에 이천 이백 마디쯤은 될걸. 나는 전일의 곁으로 붙어 앉으며 그녀에게 눈을 맞췄다.


"나도 그래. 근데 다들 그럴걸? 그런 마음 다들 한 번씩 들걸? 기회가 되면 혼자 있어봐. 주말에나, 내가 어머님께 말씀드릴게. 학교에 있을 땐 어디 강당 뒤편 계단에나 쉬는 시간마다 가 있어. 틈틈이 자주. 10분간 10번 가면 100분간 혼자 있는 거다?"


나의 황당한 처방에 전일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는 이어서 대답했다.


"근데 도피는 안돼. 회복하기 위한 방이면 라도 도망치는 건 안돼. 그리고 왕관은 원래 무겁대. 짜 많이 무겁니? 여하튼, 나는 전교 1등 안 해봐서 모르지만.. 아님 너 왕관 내려놓을래?"


내가 다다다 이어말하자 전일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녀가 누구보다 잘하고 싶어 하는 의욕이 강한 인간이란 것을 안다.


"나는 교사 되고 급식 먹은 적 없어. 점심시간에라도 혼자 있고 싶어서. 너도 너만의 탈출구를 찾아봐. "


전일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저거 보세요. 누가 운동장에서 혼자 농구하는데요?!"

"점심시간에 급식도 안 먹고 농구는 왜 하는 거래? 올해 1학년 체육 과정형 평가가 농구예요?"

"시험 열흘 전인데 무슨 과정형 평가예요. 본인이 농구를 좋아하나 보죠.. 근데 누구예요? 잘한다."


며칠 뒤였다. 점심시간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무실이 다소 소란스러웠다. 학생들이 모두 급식실로 향해서 텅 비어있어야 할 운동장에서 웬 소녀가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농구를 하고 있는 게 목격된 것이었다.

전일이었다.


나는 한발 자국뒤에서 창문으로 멀리 그녀를 내다봤다. 때마침 그녀의 3점 슛이 포물선을 그리며 골인하고 있었다.


전일, 축하해.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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