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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 반에 대답을 안 하는 친구가 있던데요.."
동료교사 한 분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게 물었다. 나는 아아- 그 친구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반에는 대답을 잘하지 않는 학생이 있다. 정확히는 의사표시를 거의 하지 않는 학생이다. 나는 그녀에 대해 어떻게 말씀을 드리면 좋을까 고민하다 먼저 양해를 부탁드렸다.
"죄송합니다. 나쁜 뜻은 없고 그저 많이 내성적인 친구예요.. "
그렇구나.. 동료교사는 내게 몇 가지를 추가로 더 물어보곤 다음 수업을 위해 떠났다. 나는 멍하니 있다 이내 정신을 차렸다. 때마침 공강이었다. 나는 책상 서랍 한편에서 신학기 때 받아두었던 그 학생의 자기소개서를 꺼내보았다. 새 학기의 기대에 차 정성 들여 빽빽하게 쓴 다른 학생들의 자기소개서와는 확연히 다르게 몇 줄 없이 텅 비어있는 종이가 유난히 휑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담임에게 하고픈 말에 쓰인 단 한 줄이 유난히 내 눈길을 끌었다.
'말 시키지 말아 주세요.'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요청사항이었다. 나는 그 아홉 글자를 천천히 곱씹었다. 무슨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이 친구는 이렇게 작성했을까. 다행인 건 학기 초의 정서행동특성검사나 여타의 검사에서 특이사항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가, 단순히 내성적인 것이니 개성으로 존중해야 하는 걸까. 그때 위클래스(상담반) 선생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그 학생과 위클래스 선생님, 학부모님의 상담이 있다는 안내 메시지였다. 자세한 내용은 나조차 알 수 없다. 비밀엄수이다. 나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짧은 답장을 회신하곤 다음 수업으로 향했다.
하루 일과를 다 하고 종례를 마치고 교실을 나오는데 위클래스 앞에서 낯선 여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희 아이 담임 선생님 맞으시죠..?"
나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학생의 어머니였다. 시간상으로도 정황상으로도 확실했다.
"네, 어머님 안녕하세요? 잠깐 교무실로 들어오시겠어요?"
내가 교무실 입구 쪽으로 안내하자 어머님은 난색을 표하면서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저 죄송하고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기다렸습니다.."
어머님은 말을 마치고 어깨에 메고 있던 핸드백을 다시 고쳐 메고 곧이어 다시 말했다.
"제가 매일 물어보는데도 학교 일을 좀처럼 말해주지 않아요.. 어떨지 예상은 가는데.. 잘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복도에서 엉거주춤 서서 고개를 끄덕이곤 멀어지는 학부모님을 배웅했다.
어머님의 마음과 그 학생의 마음이 모두 이해되었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버텨나갈 때 우리 엄마도 그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 시절 나는, 내 말이 길어지면 엄마의 걱정도 길어지는 걸 알기에 더욱 말을 아꼈었다. 아마도 비슷한 상황이리라.
나는 교무실 내 책상으로 돌아와 그 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교무실로 찾아와! 그리고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렴 》
그것은 20년 전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