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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아침에 등교할 때 우리 학교 체육복 입고 오면 안 돼요?"
학교 발전 아이디어 제안을 주제로 학급회의가 한 창이던 때, 한 학생이 별안간 손을 들며 교실 뒤편 구석에 서있는 나를 향해 물었다. 담임인 나는 원래 원칙상 학급회의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조용히 임장 해서 회의가 잘 진행되는지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흐름과 분위기를 깨고 내게 질문을 던진 학생 덕분에 스물두 개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그 학생이 연이어 질문했다.
"그냥 체육복 아니고 학교에서 지정해 준 체육복 입고 등교하는 게 왜 안 되는 거예요? 교복처럼 동일한 거 아니에요? 왜 입고 오면 안 돼요?"
연이은 질문에 학생 몇몇은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교실뒤편에서 천천히 교탁 쪽으로 걸어 나가 앞에 섰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44개의 눈동자들이 나를 쫓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다시 질문했다.
"학교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인가요?"
학생은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인지 책상 의자를 앞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내 쪽으로 몸을 더 가까이하곤 다시 말했다.
"네, 교복은 너무 불편해요. 그리고 체육시간에만 체육복을 입으란 법도 없잖아요."
몇몇의 학생들이 그 말도 일리가 있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 학생이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어찌 됐건 학급회의 시간에 나는 우리 반 학생과 실랑이하거나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 시간은 학생들의 자치 시간이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얘기했다.
"선생님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학교 발전 및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 제안이라면, 자세한 건 방과 후에 선생님에게 정리해서 말해 줄 수 있을까?"
학생은 수긍한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과가 마친 후 그 학생은 나를 찾아왔다. 아까의 격앙된 표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묘하게 지치고 시무룩해 보였다. 나는 책상 위의 비타민 음료를 하나 건네며 먼저 입을 열었다.
"체육복 입고 등교할 수 있으면 편하겠다 그지.."
학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한 때 교복을 입는 게 너무 힘들고 싫었던 적이 있어서 그 학생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복은 학교에 올 때 입는 옷, 학교 체육복은 학교 체육시간에 입는 옷으로 원칙상, 그리고 암묵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학교는 규칙이 있고, 우리는 그 규칙에 따르는 법을 배우며 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연습을 해간다.
맞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늘 학교에 의혹이 많았으니까. 학교의 불합리한 점들이 너무나도 눈에 잘 띄고 그래서 더욱 괴로웠으니까. 왜 불편한 옷을 입고 불편한 공부를 참아가며 해야 할까, 질문할 수 있다. 의혹을 가질 수 있다. 나는 교복 위로 후드 집업을 뒤집어쓴 그 학생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불편하고 이해가 안 돼도 규칙이니까 지키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도미노처럼 늘어지는데 학생이 먼저 침묵을 깼다.
"선생님.. 아닌 거, 안 되는 거 다 아는데 그래도 아니라는 제 생각을 말해보고 싶었어요.."
나는 조용히 맞은 편의 학생을 응시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선생님한테라도 말하고 싶었어요.. 죄송해요 뭔가 화풀이한 것 같기도 해요.."
학생들은 뜻밖의 지점에서 사과하곤 한다. 전혀 미안해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대답대신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똑딱였다.
"볼펜 쓰기 전에 누르면 딸칵 소리 난다?"
"네?"
"소리가 먼저 나야 글을 쓸 수 있어. 봐봐."
예..? 학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반쯤 벌리고 멍하게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딸칵, 딸칵, 딸칵 나는 신나게 볼펜을 눌러댔다.
"근데 볼펜소리 거슬려?"
"아뇨"
"거슬리는 사람도 있겠지?"
"아마도.. 요..?"
선문답 같은 그녀와 나의 대답이 이어졌다. 나는 별 뜻 없이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도통 영문을 몰라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뭔가 쓰려면 소리가 나야 해. 네가 뭔가 바꾸고 싶다면 소리를 내야 해. 누군가는 그러려니 하고 누군가는 거슬려하겠지. 근데 꼭 쓰고 싶은 글이면, 꼭 바꾸고픈 어떤 부분이면 소신껏 해. 네 소신껏. 대신 너의 원칙과 세상의 규칙 안에서 말이야."
학생은 조용해진 볼펜을 보며 말이 없었다. 대신 나의 제자 다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볼펜 저 주시면 안 돼요?"
응, 안돼.라고 대답하며 우리는 서로 웃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서 과거의 나와 동병상련 같은 마음을 느꼈다. 그녀도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음에 그리고 나름대로 도와주고 위로해 주려 몇 마디 거들었음에 마음이 아주 조금은 풀렸으리라.
나는 기어코 내게서 조르고 졸라 그 삼색볼펜을 전리품처럼 받아간 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학교, 긴장을 늦추지 마라.
의혹을 제기하는 소녀들의 수많은 반짝이는 두 눈동자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