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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호 Sep 12. 2021

31. 법정(法廷) 촌극 - 4편. 집단 관음의 순간

(근간) 사건 에세이 '사람이 싫다' 초고 3부 31번 에피소드 4편

사건 에세이 '사람이 싫다' 추석 전 예약 구매 진행될 예정입니다.

사실 볼 때마다 조금씩 욕심이 생겨서 수정과 교정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초보 작가의 어쩔 수 없는 모습인 것 같네요. 출판사 때문에 제가 고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저 때문에 출판사가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반드시 만족스러운 내용과 형식으로 선보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의 분위기가 계속 무거워진다. 애초에 이야기 하나하나가 묵직하기 때문일 거다. 사람이 싫어진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변호사를 꿈꾸는 젊은이가 이 책 읽고 혹시라도 마음 바꿀까 두렵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우울하고 괴로운 건 아니다. 웃긴 일도 생각보다 많다. 하루에도 재판이 몇 건씩 있는데 웃긴 에피소드가 왜 없겠는가.


(1) 문신아니 타투 : 전전 회차에 공개


(2) 칸의 여왕 전도연


(3) 딱 봐도 마담 전 회차에 공개


(4) 집단 관음의 순간


 이번 역시 앞 사건 재판이었다. 서울보다 재판 더 많기로 소문난 법원이었는데, 사람이 너무 몰려 방청석이 꽉 찼다. 변호사들도 앉을 자리가 없어 구석에 뻘쭘하게 서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에어컨도 시원찮았다. 에어컨이 사람들 체온을 못 이겼다. 덥고 답답했다. 다들 자기 순서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겨우 참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사건 재판이 시작됐다.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남성이 멀끔한 정장을 입고 나와 무죄를 주장했다. 증거 조사가 이어졌다. 동영상이 증거로 제출됐다. 규정에 따라 영상이 법정에서 재생됐다. 고급 위스키 바(Bar)에 엉덩이가 닿을 정도로 나란히 붙어 앉아 있는 피고인과 주점 여종업원의 뒷모습. 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커다랗게 비쳤다.

 강제추행 사건의 피고인과 피해자가 함께 등장하는 영상이었다. 게다가 그 여성은 몸에 착 달라붙는 빨간색 얇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CCTV 카메라가 등 뒤에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화양연화’ 속 빨간 치파오 입은 장만옥처럼 고혹적이었고, ‘말레나’의 ‘모니카 벨루치’처럼 매혹적이었다.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 많은 사람이 일순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숨죽여 시청했다. 음성이 없는 영상이었다. 덜덜거리는 에어컨 소리와 오래된 프로젝터 특유의 바람 소리만 들렸다. 소리가 없으니 오히려 더 집중됐다. 옆 사람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릴 정도였다. 이제 곧 분명히 뭔가 결정적 장면이 나올 거야. 그렇게 모두가 기다렸다.

 사실 보라고 시킨 사람 한 명 없었고, 방청객이 다른 사람 사건 증거를 굳이 볼 필요도 없었지만, 모두가 집중했다. 이런 걸 보면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칠 필요 없다. 자기 주도 학습이 최고다.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 그런데. 영상이 갑자기 툭 끝났다. 이게 뭐지?     


 이어서 변호인이 입을 열었다. 앗, 검사가 아니고 변호인이? “재판장님. 지금 시청한 것과 같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렇게 둘 사이에는 당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곳곳에서 웅성거렸다. 아주 조그맣게 괜히 봤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 영상을 증거로 제출한 건 변호인이었다. 검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강제추행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다들 숨죽여 보다니. 그 순간 그 후끈한 법정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역시 인간이란 모순과 결함 덩어리다. 모두 다 똑같다. 나의 솔직한 자백이기도 하다.


(5) 이런 우연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니     


큰 관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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