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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호 Sep 16. 2021

[사람이 싫다] 머리말 초고

머리말을마지막으로 집필작업 종료

 변호사는 ‘글 쓰는’ 사람이다.

 

 다양한 법률 서면을 쉴 새 없이 작성한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표현으로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내 편으로 돌려놔야 한다. 해결하기 힘든 사건을 마주한 변호사가 긴 시간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물도 결국 글로 제출된다. 그 글의 일부가 말이 되어 법정에서 오간다.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말이 아니라 글이다. 변호사는 글을 써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사람이다.     


 변호사는 ‘통역사’이기도 하다.


 일상의 말과 글을 법률 용어로 바꿔 법정에 내놓는다. 반대로 법정의 언어를 잘 풀어서 의뢰인에게 전달한다. 사람들은 법조인들이 필요 없이 어려운 말을 쓴다고 지적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 법률 용어는 특수한 기술 분야의 언어에 가깝다. 나름의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은 효율적이다. 정해진 기준을 따르면 오해 없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소통할 수 있다. 오래전 의사들이 휘갈겨 쓰던 수기(手記) 차트와 같다. 알파벳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 의미는 전혀 알 수 없는 프로그래밍 언어와도 비슷하다. 변호사는 자신들의 기술 용어를 사용해서 세상과 법정을 연결한다.     


 이처럼 변호사의 하루는 글을 쓰며 시작되고, 글쓰기를 멈추는 순간 그날의 일이 끝난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변호사의 글쓰기와 문학은 완전히 달랐다.

 

 법률 문장은 상상력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해석의 여지를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는 문장은 법률 문장으로 사용될 수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된 논리로 빈틈없이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글과 그 글을 쓴 변호사 모두 실격이다. 반면 문학은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어야 한다. 문장에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바로 거기에 문학의 가치가 있다.     


 낮에는 논리와 인과법칙에 기초한 법률 서면을 작성했다. 밤이 되면 틀에서 벗어나 내 이야기를 풀어냈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일이기 때문에 두 작업을 오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잘 적응해야 했고, 이제 그 결과물이 나왔다.


 재판 결과를 기다릴 때처럼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재미있다는 평을 듣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변호사의 일상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동안 겪은 일을 꽤 많이 털어놨다. 책 전체에 직접 겪은 에피소드가 펼쳐져 있다. 다 써놓고 천천히 살펴보니 좋아하는 왕가위 감독의 네 작품이 순서대로 떠올랐다. 각 파트별로 영화의 분위기와 묘하게 닮아있었고, 시간 순서도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네 편의 영화명을 제목으로 들고 왔다.     

침사추이, 홍콩




 이제 작업을 다 마쳤다. 사실 출판사만 허락한다면 앞으로 3년 정도는 더 끌어안고 세심하게 가다듬고 싶다. 하지만 일단 마침표를 찍어야 다음 문장이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과감하게 그 점을 찍었다. 여러분 인생 최고의 책은 아닐지라도 기억에 남는 책이 되길 기대한다.


 그렇게 되리라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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