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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호 Nov 21. 2021

우리가 K리그를 보는 이유 (1)

히든K 대표이사, 발행인 손수호 변호사의 K리그 칼럼

즐길 게 많은 세상. K리그는 마이너


세상은 넓다. 즐길 거리도 많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온 세상 영화, 음악, 웹툰에 예능까지 거의 공짜로 다 볼 수 있다. 유튜브는 언제 어디서든 세계 일주를 넘어 실시간 우주 구경까지 시켜준다. 놀라운 일이다. 게임의 세계는 또 얼마나 방대한가. 동물의 숲에 모여 용과 같이 배틀 그라운드를 지나 아덴으로 집행검 사서 서든어택 날릴 수도 있다. 온라인 게임의 중독성은 엄청나다. 여기에 음주, 가무, 연애, 등산, 낚시, 독서, 요리, 바둑, 서예, 공부, 청소, 봉사활동, 멍때리기 같은 고전적 여가도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다.


주변에 놀 거리가 넘쳐난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알차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돈 없고 시간 부족한 게 문제일 뿐이다. 체력만 허락한다면 각자 성향과 상황에 따라 뭐든 골라 맘껏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축구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K리그를 즐긴다. 우리 취미는 <대한민국 프로축구리그>다. 심지어 비싼 돈 주고 <2021 K리그 스카우팅리포트>라는 두꺼운 책도 샀다. 하지만 엄마가 졸업 앨범 같이 생긴 이 책이 대체 뭐냐고 물으면,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난감해진다. 말문이 막혀버린다. K리그를 모르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척하면 척이 불가능하다. 설명해도 잘 전달이 안 된다. 그만큼 K리그는 마이너다.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른다.     


사람들은 손흥민은 알아도 송홍민은 모른다. 박지성은 알지만 박진섭은 모른다. 히딩크는 영웅이지만 히칼도는 들어본 적도 없다. 박격포는 알아도 박진포는 모른다. 김대중, 오세훈, 이재명이 골 넣었다고 하면 정치인이 그 나이에 축구도 하냐며 어리둥절해한다. 이동준이 어제 상대 측면을 완전히 허물었다고 말하면 눈물의 똥꼬쇼를 떠올리며 그게 왜 측면인지 의아해한다.     



K리그를 좋아하는 특이한 사람들에게는 명분이 필요하다.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야, 축구 왜 보냐? 그 시간에 딴 거 하고 말지.” 그렇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하다 축구를 좋아하게 된 걸까? 그런데 이런 질문은 더 날카롭다. “축구는 해축이지. 넌 수준 떨어지게 개축을 보냐? 아니 밥 먹고 축구만 하는 애들이 저게 뭐냐? 저게 크로스냐 슛이냐? 쟤들은 발이 세모냐? 개축 잔디는 원래 노란색이냐? 오늘도 무관중이냐?”


그러게 말이다. 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그냥 당하고만 있으면 너무 분하다. 그렇다. 우리에겐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은 최익현 대부님(최민식)과 조직 보스 최형배(하정우)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K리그를 좋아하는 이유 몇 개 정도는 언제든 술술 읊을 수 있도록 준비해둬야 한다. 그래야 난데없는 공격에 내상 입지 않고 버텨낼 수 있다. 어지간한 공격은 바로 맞받아칠 수 있도록 준비해둬야 한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K리그 팬질 계속하려면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이.


히든K 대표이사, 발행인 손수호

* <2021 K리그 스카우팅리포트, 브레인스토어>에 실은 글을 고쳐 썼습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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