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K 대표이사, 발행인 손수호 변호사의 K리그 칼럼
1편에서 이어집니다.
가장 먼저 <직관>. 입출국 절차 없이 경기장에 가서 간단하게 관전할 수 있다.
상쾌한 잔디 향과 김 모락모락 컵라면 냄새도 맡을 수 있다. 벤치의 작전 지시와 선수들 숨소리까지 들린다. 땀에 젖어 찰싹 달라붙은 유니폼 입고 숨 헐떡이는 모습을 직접 보면, 어지간해선 선수들 욕 못하게 된다. (그러니 실제로 경기장에서 팬들에게 욕먹는 선수는 정말 욕먹을 만해서 욕먹는 거라고 봐야 한다)
한여름 야간 축구의 시원함과 롱패딩 입고 핫팩 서너 개 비비면서 덜덜 떨며 보는 혹한기 축구를 한 시즌에 모두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승강 플레이오프의 그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긴장감에는 한겨울 추위도 한몫한다. 그리고 골대 뒤에서 이게 응원인지 살풀이인지 헷갈리는 몸부림을 칠 수도 있고, 꼭대기에서 홀로 내려다보며 고고하게 양 팀의 전술 싸움을 즐길 수도 있다. 축구는 역시 직관. 직관하려면 K리그. 그래서 우리는 K리그다.
그러다 보면 내 팀이라는 <소속감>이 생긴다. 점점 더 몰입하게 된다. 이기면 세상 모든 근심 다 잊고 환호한다. 지면 세상이 무너진 듯 낙담한다. 일주일 내내 괴로워서 축구 기사는 쳐다보지도 못한다. 아예 포털 메인 화면부터 외면한다. 그 일주일 동안은 내 삶에 축구는 없다.
하지만 세상사 원래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지나가면 좋은 일이 오는 법. 너무 잘해서 그 선수 이름 유니폼에 마킹하면 겨울에 바로 다른 팀 가버려서 실망한다. 분노에 차 구단 버스 막으려고 길바닥에 드러누워서는 여름에도 생각보다 바닥이 시원하다는 유용한 생활 상식을 얻을 수도 있다. 대충 상황 정리된 후 몸 일으켜 세울 때의 뻘쭘함은 덤. 이렇게 K리그를 통해 ‘인생은 일희일비’라는 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까르페 디엠, 세 라 비, 라 돌체 비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 등등 다 K리그에 적용된다. 이렇듯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이 팀은 우리 팀이다. 내가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 팀은 K리그에 속해 있다. 그래서 우리는 K리그다.
<원정>의 설렘도 빼놓을 수 없다. 주말마다 내 팀 따라 전국 여행 다니면 한국 지리 공부는 저절로 된다. 하루 먼저 떠나 여유롭게 동네 구경하고 맛집도 순방한다. 축구 아니면 가볼 일 없을 먼 동네 어떤 식당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도 알게 된다. 팬들 사이 정보 공유도 활발히 이뤄진다.
그게 끝이 아니다. 무시무시한 표정의 홈 관중들 사이로 원정 유니폼 입고 걸어갈 때는 왜 우리 사회에 소수자 배려가 필요한지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국제법’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던 ‘상호주의 원칙’이 K리그에도 있었다니. 원정석 티켓값은 상대 구단 가격 정책에 따른다. 그래서 그게 도대체 얼마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횟집 메뉴판에 적힌 비싼 횟감 가격이 ‘시가’인 이유를 깨닫게 된다.
원정 다니며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돌아온다. 감성 충만 최고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집에 돌아와서는 쓰러져 자느라 밤에 해외리그 볼 틈이 없다. 누구보다 알찬 주말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K리그다.
또한 동지애와 투닥거림을 넘나들며 <인간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된다. 다른 구단 팬들과 티격태격하다가도 누가 K리그를 비하하면 그 순간 우리 모두 동맹 맺고 공동 대응한다. 하지만 또 다른 사건이 터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서로 으르렁댄다. 이렇게 모든 관계는 오락가락하며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배운다. K리그는 우리에게 이런 심오한 철학적 가르침까지 제공한다. 그래서 우리는 K리그다.
K리그를 좋아하면 40년 가까이 쌓인 우리 프로 축구의 <역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리그 레전드들의 과거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옛날 자료도 많다. 크게 성공한 히든풋볼도 있고, 히든인천처럼 구단 팬들이 자발적으로 시간 들이고 돈 쓰면서 만드는 방송도 많다. 팬심으로 만든 방송은 순수하고 감동적이라 가슴을 울린다. 각 구단 팬들이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발히 운영된다. 함께 하며 끈끈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K리그다.
K리그 덕에 <해외>에 갈 수도 있다. 세상 모든 프로 리그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잘하는 팀은 각 대륙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고, 우승하면 클럽 월드컵에 나간다. 이름만 들어도 탄성 나오는 세계적 선수와 우리 팀이 맞붙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경기를 보러 주중이지만 해외에 나간다.
응원하는 팀 전력이 약하다고? ACL은 남 얘기라고? 그래도 괜찮다. 일단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일본 원정 대비해서 아르바이트 시작해라. 태국 원정 준비하며 적금 붓고, 호주 원정 대비해서 투잡 쓰리잡 뛰어라. 아무리 봐도 30년 내 진출 가능성이 없는 막막한 팀도 많지만, 그렇다면 그 대신 당신은 부자가 될 수 있다. 축구와 함께 목돈까지 만들어주는 신개념 재테크 취미생활 K리그. 그래서 우리는 K리그다.
이게 끝이 아니다. K리그는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건장한 체격으로 경기장을 누비는 선수들을 보고 나면, 거울 보는 게 두려워진다. 특히 종료 직전 극장 골 넣은 선수의 상의 탈의 셀러브레이션을 보고 나면 더욱 그렇다. 좋은 자극이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축구, 풋살, 조깅, 웨이트, 자전거, 수영, 요가, 필라테스 하면서 건강이 좋아진다. 다만 이겼다고 축하주, 졌다고 위로주 마시면 오히려 마이너스이니 그건 좀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게 있다. K리그는 저렴하다. 단돈 만 원이면 서너 시간 확실하게 즐길 수 있다. 이 정도 <가성비>는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PC방, 플스방, 당구장, 노래방보다 싸다. 시즌권 사면 더 싸진다. 이렇게 건전한 취미가 별로 없다. 운 좋으면 자동차를 경품으로 받을 수도 있다.
한편 우리 고장의 <살림살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한 명의 당당한 주민으로서 내가 낸 세금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다. 어차피 지자체는 여러 종목에 돈 쓴다. 그것도 꽤 많이 쓴다. K리그 팀을 운영하지 않으면 그 돈은 다른 종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지자체가 K리그에 돈 쓰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그냥 하는 일이 아니다. 쓰는 돈보다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K리그에 투입하는 거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러니 우리는 즐길 수 있는 건 마음껏 즐기면서 팀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감시하면 된다. K리그를 보면서 납세자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아직 한참 더 남아 있다. 하지만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면 자칫 장난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단 이쯤에서 줄이겠다. 그래도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K리그는 아시아 최고 리그다. 우리는 매주 아시아 최고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다.
우리 리그의 환경과 경기력을 부러워하는 외국 축구팬들이 엄청나게 많다. 전 세계 수십억 명 이상이 K리그의 경기력에 감탄하고 K리그 팬을 부러워한다.
우리 모두 최고 리그 팬이라는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
자랑스러운 K리그를 우리 모두 신나게 즐기자.
히든K 대표이사, 발행인 손수호
* <2021 K리그 스카우팅리포트, 브레인스토어>에 실린 칼럼을 일부 고쳐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