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는 사람들
2005년 군인 시절, 나에게 참 잘해주던 선임이 있었다. 그 선임 덕분에 군 생활을 버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도 기억하는 추 억 중 하나는 그 선임이 휴가를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이등병이었고, 그 선임은 내무반에서 힘이 있던 상병이었다. 휴가 를 다녀온 그 선임이 나를 조용히 불러 막사 뒤로 몰래 데려가더니 품에서 햄버거를 꺼내 주었다. 한겨울이라 식을까 봐 밖에서부터 품에 넣어 온 것이다. 자기 남동생과 내가 많이 닮았다며 전역하는 동안 날 잘 챙겨주었다. 그런 그 선임과 보초를 나가면 이야기를 참 많이 했었는데 우린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그건 서로의 결혼식 에는 꼭 가자는 약속이었다.
얼마 안 돼 그 선임은 전역했고 나도 1년 뒤 전역한 후 간혹 연락 을 주고받았다. 취업하고 바쁘게 살다 보니, 연락도 줄고 잊고 살 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형이 5월에 결혼을 한다며 연락이 왔 다. 그때 당시 하던 사업이 잘 안 돼서, 난 빚을 잔뜩 지고 사업을 접던 때라 수중에는 3만 원이 전부였고, 자존감까지 바닥난 상태 라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가지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 188 189 만 약속을 어길 순 없었다.
결혼식장은 압구정에 있는 한 호텔이었다. 난 서울 사람들은 다 그런 곳에서 결혼하는 줄 알았다. 서울에서 하는 결혼식 참석은 그 때가 처음이라,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이 드문 일인 걸 잘 몰랐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축의금을 내고는 예식홀 안에 들어서니 동그란 테이블에 하얀 천이 깔려있었고, 높은 천장에 샹들리에가 화려함 을 더했다. 형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고 나를 보더니 너무 반가워하며 내 이름이 적힌 좌석으로 안 내했다.
“역시 올 줄 알았어. 오느라 고생했어. 밥 맛있게 먹어.”
“형, 결혼 정말 축하해요. 너무 멋지네요.”
“고마워 사진 찍을 때, 넌 꼭 내 옆에 있어야 해! 알았지?”
하객이 너무 많아서 형은 정신없이 다른 곳으로 불려 다녔다. 예 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식사가 나왔고, 처음에는 수프와 샐러드가 나오더니 예식 순서에 맞춰 메인 식사가 나왔다. 스테이크 고기 를 썰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들 신랑 신부만큼 행복해 보였다. 누 가 봐도 다들 신경 써서 잘 차려입고, 표정에는 여유가 보였다. 주 례가 끝나고 축가까지 마무리되니 사진 촬영이 있다며 사회자가 알렸다. “곧 사진 촬영이 있으니, 신랑 신부친구분들은 단상 앞으 로 나와 주세요”라고 하는데 그곳에 낄 자신이 없었다. 그저 멀리 서 보고 있는데, 형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멀리 있던 나를 보며 오라고 손짓했다. 할 수 없이 옆에 가서 섰더니 내 손을 꽉 잡고는 “어디에 있었어. 내 옆에 있어야지”라고 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결혼식장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축의금을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 미안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나랑은 동떨어진 행복한 세상에 있다 나온 기분이 들어서 우울감이 밀려왔다. 어쩌 면 날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타인의 말이나 시선이 아니라, 나 스 스로가 느끼는 자기 연민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가 신경 쓰는 것보다, 날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안다. 맞다. 결국은 자 신이 스스로에게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를 일 으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도 ‘나’뿐이다.